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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07. 2024

어찌할 수 없다. 보내야 한다.

늦둥이 아들이 입대하는 날_첫번째 이야기

우리 부모들은 흔히 자식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거나 어려운 일을 시킬 때 자기 탓을 한다. 

"내가 못나서 너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시키는구나"하고 말이다.

내가 늦둥이 아들의 군 입영식을 보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2024년 3월 5일 늦둥이 아들이 입대했다.

내가 43살 되던 해에 태어난 아들이다.

내가 군대를 다녀온 지 43년 되는 올해 입대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우연의 일치다.


입영 전날, 비행기가 무려 2시간여나 지연되는 난리법석을 하면서 어렵게 서울로 갔다. 

아들은 서울에서 친구들과 입영하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10여 일 전에 미리 상경을 했다.  

딸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서 입영전야를 보내기로 했다. 


나 때는 친구들과 최백호의 입영 전야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아쉬운 맘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
..................... 중략 .....................
내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는 가슴에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 


도착하니 아들이 혼자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이제는 입대하면서도 가져가야 할 게 꽤 많은 모양이다. 부대에서 보내준 문자를 보면서 일일이 챙기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미리 챙겨두면 군대를 가는 기분이 더 날까 봐 날짜 다다라서야 챙기기로 한 모양이다. 그 기분을 나는 익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아내와 딸들은 입대 전날 아들에게 기억에 남을 저녁 식사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몇 일간 카톡이 난리가 났다. 18개월 동안 집을 떠나는 거라 집밥이 우선이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여의찮아서 얘기가 길어졌다.  

"집에서 갈비찜을 해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가져갈께.." 아내가 폭탄선언읋 했다.  

"갈비찜이라! " 쉬운 일이 아님에도 아들을 위해서 기꺼이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모두 환영이다. 갈비찜은 이 분위기에서는 최고의 메뉴나 여기서 준비하고 가져가는 게 쉽지 않아서 모두가 얘기하기를 망설인 것이다. 애들이 모두 좋아하는 엄마의 최애 음식이다. 아내도 애들이 내려올 때면 으례 준비를 하고 애들도 엄마맛이 난다고 하면서 맛있게 먹어준다. 그러기에 의미 있는 음식이 될 것이기에 아내도 어려운 결정을 했다. 며칠 전부터 갈비를 사다가 양념을 하고, 재워서 익혔다. 가져가서 바로 데워서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했다. 냉동을 시켜서 국물이 흐르지 않게 잘 포장하고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입영 전야다. 아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를 하고 싶었다. 아들은 친구들하고 입영 전야를 보내고 싶을 텐데 일정 조절을 위해서 가족과 함께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기에 분위기를 맞추고도 싶었다. 그러나 많이 마시면 안 되기에 아침에 동네 슈퍼에서 플라스틱병에 담긴 휴대용 포켓 소주를 샀다. 

엄마표 갈비찜과 고향 산 한라산 21을 조그만 상에 펼쳐놓고 앉았다. 첫째는 퇴근이 늦어져서 한자리는 비었다. 이런 자리, 정색을 하면 어려워진다. 그냥 각자의 식사를 했다. 평소와는 다르지 않았으면 했는데 사실 그게 어렵다. 모두가 서툰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손도손 5명이 한방에 끼워 자기로 했다. 아내는 아들 옆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내는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들은 척 못 들은 척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사실 나도 잠이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까지 깨어 있으면 좀 그럴 것 같은 분위기다. 아들은 자꾸 방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카톡이 쉬지를 않는 모양이다. 


" 어제 4시가 넘도록 잠을 못 이루는 것 같던데.." 아내가 아침에 깨자마자 나에게 얘기를 했다. 아들은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아침에야 조금 눈을 붙인 모양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어쩔수 없다지만 18개월을
자기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야하니 말이다.  

  

" 아침밥을 좀 먹여서 보냅시다. 갈비찜에 한 수저만이라도 밥을 먹게 해주고 싶은데.." 아내의 얘기다.

" 그래, 나하고 아들하고만이라도 먹지 뭐.." 이른 아침 9시 상황이다. 평소에는 자고 있을 시간이다. 일어나기도 힘든데 아침을 먹자니 밥이 먹히지가 않는다. 아내는 옆에서 아들의 먹는 모습을 보고 재촉하지만 거기까지다. 

   


예약해 둔 카카오택시는 10시에 집 근처로 오기로 했다. 

서울에서 5사단 신교대가 있는 연천까지는 1시간이 더 걸리는 꽤 먼 거리다. 미리 근처에 가 있는 게 편하다는 아들의 의견을 따라서 미리 서두르기로 했다. 신교대 근처에는 마땅히 쉴 곳이 없기에 전곡역으로 갔다.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몇 가지 비상 약품을 구입하고는 전곡역사도 들어가 보고 구시가지의 모습도 휘 둘러보았다. 쉴 곳인 카페를 찾았다. 찻집이나 카페보다는 다방이 많은 동네였다.   

역이다 보니 오가는 군인들도 종종 보인다

말쑥하게 군복을 차려입은 군인들의 모습이 부럽고, 괜히 어른스러워 보인다. 우리 아들보다는 고참이니까 말이다. 여기저기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복 차림의 까까머리 애들도 보인다. 오늘 우리 아들과 같이 입대하는 입대 동기생들일 거다. 

"이젠 군인들만 보여.." 아내가 불쑥 던지는 말이다.  



당초 생각으로는 점심을 먹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 지금 시간이 12시 전이니 아침을 먹은 지 3시간밖에 안 됐다. 아침 일찍 깨고 안 먹던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아들은 별로 생각이 없다 한다. 


하긴 지금 뭐를 먹은들 입맛이 있을 리가 없다. 잠깐 차를 한잔 마시면서 앉아 있을 생각으로 주위에 있는 던킨에 들어갔다. 몇 개의 도너스와 가볍게 차를 주문했다. 


"던킨도너츠, 참 오랜만이다. 내가 출장 다녀올 때 김포공항에서 자주 사 오던 거, 그때 제주에는 없었거든.."

"맞아, 그때 우리가 밤늦게 기다리다가 먹고 했는데,, 아들은 모르지.." 첫째가 냉큼 대화를 받는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던킨도너츠다. 


1시간여를 보내고 오후 13시에 신교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들은 속으로야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쾌활하고 밝게 누나들과 엄마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해졌다. "참 많이 컷구나" 그리고 남을 위해서 자기 속마음을 감출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였구나! 하는 생각에 든든해지기도 했다.       


전곡역에서 신교대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는 하나 배차 간격이 엄청났다. 기다리다가는 늦을 것 같기에 다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참 편한 세상이다. 부르면 어디든지 즉시 달려오니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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