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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Oct 10. 2024

그리움과 걱정사이

입대한 늦둥이 아들의 첫 휴가 오는 날 아침에


오늘은 고향 집에서 우리 부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다.  

지난 3월 입대한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오는 날이다. 입대한 지 220일 만이다. 군에는 100일 휴가라는 제도가 있어서, 입대하고 100일 전후로 많은 아들들이 휴가를 다녀간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아들은 근무지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이 하루 일정이라 짧은 일수로는 휴가 나올 생각을 못 했다. 매일 단톡에서 집에 가고싶다고 얘기를 하는 아들이 집에 대한 그리움의 무게감은 이를 견뎌낸 아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리움을 220일 동안 참고 견딜 수 있다는 정신력은 군에 입대한 아들의 변한 모습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오늘 아침에 캠프를 열어보니 근무 기간이 40.1%, 전역일까지 남은 기간이 329일이라고 나온다. 거의 군복무 기간의 반 정도를 채우고 나오는 첫 휴가다. 캠프 앱은 3월 입대한 아들이 근무 기간을 매일매일 추적할 수 있는 나의 작은 위안이다.



아들이 근무가 없는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매일매일 연락을 한다. 

주로 가족 단톡을 이용한다. 가족 서로의 상황, 특히 아들의 오늘 하루 일정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얘기를 같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가끔 전화 통화도 한다. 그러니 매일 저녁 5시는 우리 가족의 사이버 저녁 모임 시간이다. 아들이 복무한 220일 동안 이런 일상을 걸러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소통의 힘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크고 굉장하다. 외견상으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단지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통은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내면의 힘을 가졌다. 대화 과정을 통해서 이해와 설득, 설명이 수반됨으로써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같은 공간 같은 상황에 있다는 일체감을 준다. 서로에게 감정적 영향을 준는 것이다.

 

매일매일 아들하고의 이런 일정을 반복하다 보니 아들에 대한 궁금한 상황이 많이 해소된다. 걱정은 궁금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는지, 어떤 곳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는 까닭에 걱정은 더 많이 생긴다. 궁금한 상황이 많이 해소되다 보니 처음보다는 걱정이 덜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살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움은 다르다. 

서양 격언에 "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흔히들 사회에서 누구를 만나거나 헤어지면서, 아쉬움을 떨쳐내고자 많이 사용한다. 연인관계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다. 잊혀도 되는 관계에서는 적절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관계,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는 아니다.  


흔히들 부모들이 자식을 얘기할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 사이는 아주 특수한 관계, 어떤 것으로도 뗄 수 없는 천륜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더 보고 싶어진다. 


집 안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아이들하고의 추억은 좀처럼 사라지지가 않는다. 같이 있을 때는 별생각이 없다가도 곁에 없으면 그 추억이 갑자기 보이고 떠오른다. 마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것들이 보이면 자동으로 발길이 멈춘다. 그리곤 돌아선다. 이젠 그것을 만들어주어도 좋아할 아이들이 없음을 알아차리고서다. 식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둘만이 사는 집, 식탁과 먹을거리는 이것저것 빼니 부실해진다. 가끔은 예전에는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모든 것들에는 추억이 묻어있다. 


주변에서 내 나이 또래로 자식들이 모두 분가를 한 경우는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애들이 모두 제 갈 길 가고 우리 부부만 남으니 집이 너무 커서, 작은집으로 이사갈려고.." 이사가는 이유를 물으면 무심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추억을 지우기 위해서다. 빈곳을 채울수 없음에 빈곳이 없는 곳으로 이사 간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추억은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단지 기억에서 잠시 멀어져 있을 뿐이다.



이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된다.

오늘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대합실에 들어가서 맞이할 예정이다. 군복 입은 제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아들은 10일이 안 되는 휴가 기간 매일 일정표를 세밀하게 구성해서 보내왔다. 매일매일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잘 건지까지다. 주도면일한 아이다. 휴가가 결정되고서는 한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모양이다. 매일 만날 친구들을 연락하고.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정리를 했다고 한다. 


고향 집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박4일이다. 

모처럼 찾은 고향집에서 그동안의 무게감과 부담을 내려놓고 푹 쉬게 해야겠다.

걱정이나 그리움도 잠시 묶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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