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희망보다 솔직하다.

쇼팬하우어

by 나원

그렇고 그런, 뻔하디 뻔한, 너무도 당연한, 그런 말들의 연속인 책들이 이제 슬슬 지겨워졌다.

알면서도 뭔가 다른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책을 사고, 읽고 나서 흡족하지 못했던 경험도 종종 있다.

책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라서 나에게 별거 없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오기도 한다.

쇼팬하우어 역시 요즘 서점가를 들썩이게 한 베스트셀러다. 모두가 열광한다지만 어차피 그들의 얘기는 나와 다르고 또 뻔한 내용일 거라 교만을 떨었었다. 그러나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나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쇼팬하우어를 읽어본다. 그런데, 초반부에서 나를 압도했던 문장."절망은 희망보다 솔직하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부정하게 되지 않는, 묘하게 설득되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생각했다. 절망과 희망은 부정과 긍정의 대표명사다. 그런데 절망의 솔직함이라.. 그 순간 절망이 영화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의인화되어 내게 다가왔다.

원래 나쁜 아이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미움과 원망만 받다가 초라해진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와 슬며시 쉴 곳을 의탁하는 그런 장면이 그려진다. 그 모습은 왠지 나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측은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좋아하고 환영받는"희망"은 원하는 이들이 많아서 늘 바쁘다.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내게 온 희망에 들떠 있던 사람들은 금세 다른 이에게 가야 하는 바쁜 희망을 오래 볼 수가 없다. 반대로 절망은 누구도 원하지 않아 항상 시간이 많고 누군가의 곁에 가게 된다면 조용히 오래 머물 수 있는데 모두는 절망에게 화를 내고 빨리 떠나라고 등 떠민다.

난 이 부분에서 절망이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누군가에게 찾아간 절망. 그러나 절망은 그 사람의 분노와 원망과 미움과 온갖 욕설을 모두 받아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머무른다. 아무 말 없이 고요하게, 적응할 시간도 충분히 주면서.

나 역시 혐오하기도 했던 나의 절망의 순간이 빨리 사라지기만을 원했지만 절망은 내게 충분한 시간을 준 후에 떠났다. 모든 미움과 분노를 받은 채. 그리고 고생한 그 사람에게 희망을 데려다준다.

잠시나마 머물러 기쁨을 줄 수 있게.

이 처럼, 어쩌면 희망은 뜬구름처럼 잡히지 않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만 남긴 채 손에 쥐기는 어렵다. 모두가 쫓고 있는 희망은 절망이 온 후에 온다.

그래서 희망은 더 빛난다. 잔디밭에서 열심히 찾고 있는 네 잎클로버는 찾기 어렵다. 행운보다 더 좋은 말인 행복의 세 잎클로버는 많아도 찾지 않는다.

많다는 이유로 중요함을 잊고 산다. 많은 절망들은 찾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귀한 희망은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절망 없이 희망이 귀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또다시 내게 절망이 찾아온다면 많은 이들에게 미움과 원망을 받아 지친 절망에게 쉴 곳을 내주고 조용히 위로한 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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