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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원 Nov 08. 2024

위로가 되지 않을 위로의 말

어제 수업하러 온 학생이 많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내게는 소중 하지만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학생이었다.

그녀의 상황을 알기에 어깨가 축 처져 있는 학생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나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도움이 되고 싶어 떠오르는 대로 위로라는

명분으로 이야기를 했다. 말을 하면서 머릿속 한편에서는'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가?'

내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해 보라고 했다.

너무나 열심히 살아온 그녀, 자신을 엄하게 몰아부치고 결과에 가혹한 날들을 보내왔을 것이다.

나 역시 나 자신에게 냉정하고 엄격하며 자비가 없었다.

늘 부족함 앞에 신랄하게 평가하고, 살아왔던 삶을 틀렸다 부정하기도 했다.

그녀도 지금 그렇게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남겨져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자신을 조금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라는 말. 아마 그러면 나라는 또 다른 자아는 많이 안쓰러워 보일 것이다.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부치는 나를 따라가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자신이기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따라오느라 얼마나 지쳐있을지..

그래서 자신에게 자유와 휴식을 주라고 말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을 테니 조금은 편안히 쉬라고. 언제나 고통이라는 것은 나만의 몫이다.

부모도 형제도 남편도 자식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아픔은 내가 알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이만큼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녀를 보며 과연 이런 나의 말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내가 힘들었을 때도 누군가는 나에게 좋은 말들을 해주었을 테지만 새겨듣지 못했다.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동정이라도 좋으니 내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런 위로들은 허공으로 부서지고 만다.

그 말들이 나에게 들어오지 않는 건, 결국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학생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붓글씨를 배운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나도 고통스러운 순간에 붓을 들 수 있음이 얼마나 나를 지탱해 주었는지를 잘 알기에 학생들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붓글씨가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 자신에게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을 했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려고 노력은 했었는지를..

모든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래야 가족을,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그녀도 자신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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