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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지는시간 Jun 06. 2022

세잎클로버

나는 우연하게도 대단히 큰 마음의 변화가 와 작년 9월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백수가 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도 어쩔 수 없는 흙수저 인생에 별다른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던 해야 했고

무슨 일이던 다행히도 나는 잘 적응하고 잘 해냈다.

그러나 쓸데없이 조금 과한 꼼꼼함과 부족한 인간이 내면적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여기는 방법 중 하나인 완벽함을 선택하는 바람에

내가 선택한 내 삶은 참으로 피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쩔 땐 내 성격에 내가 지쳐 내가 나를 나무랐고 나 자신이 제일 싫었다.

그리고 나이는 들어갔고

내가 갖고 있던 체력은 바닥이 났다.

더 이상 버틸 힘이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힘겨웠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두통이 찾아오면 벽 모서리에 아픈 머리를 찧고 싶을 만큼 괴로운데

특수고용직 근로자인 나는 고객 앞에서는 웃어야 했고, 기계 앞에서는 조금의 실수도 있을 수 없었다.

검사를 해봐도 별것도 없고 두통의 원인을 찾아보려 해도 딱히 대단하게 변명을 들이댈 것도 없었다.


나는 책임이라는 무게에 지쳐 있었고

나 아니면 안 될까 봐 참고 버티는 삶을 살았고

성격은 지랄 맞아 손목터널 증후군과 잦은 요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런 이유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니

이렇게 고단한 인생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으며

내가 돈을 안 벌면 각종 보험료, 세금, 자동차 기름값, 카드값은 어떻게 감당하지? 보다


뭐 어때?  내가 이러다 죽는 것보다 낫고, 이렇게 힘들게 버티다 폐지도 못 줍는 늙은이가 되는 것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곱만큼 모아 둔 돈 까먹으며 좀 쉬자를 선택해버렸다.


배포 있게 회사도 때려치웠으니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야지 했지만.

나는 핸드폰 요금제를 낮추고 필요 없어야 될 보험 렌 제품해지하고, 세 군데쯤 다달이 기부하던 곳 중 두 군데를 울면서 해지하는 일부터 하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았으나 기름값과 숙식비가 무서워 다닐 수 없었으며

출근 할 일도 없는데 밤 11시만 넘으면 잠이 쏟아졌고 새벽 5시 반만 되면 잠이 깨져 짜증이 났다.

배달음식이나 외식은 돈이 아까워 할 수 없으니

삼시세끼 꼬박꼬박 차려내야 하는 것도 지지리 궁상스럽고

내가 이러려고 회사 그만뒀나 싶어도 두통이라도 낫길 바랬는데 바로 낫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마침 거제도에 세컨하우스를 마련한 친구가 있어 틈만 나면 거제도로 달려가 낚시를 하고, 밭을 일궜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시골집.

그렇게 하고 싶었던 낚시

더 하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던 이런저런 농작물 재배.

완벽하게 경험한 멍 때리기.

보너스 같은 해루질.


진정한 쉼이 찾아왔고, 내가 뭘 해야 가장 행복한 지도 알게 되었다.

잡풀로 뒤덮인 땅을 뒤집고 잡초를 제거하며 나는 두통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


땅은  나를 쪼아대지도 다그치지도 않는다.

수많은 감사함의 인사를 건네게 되며

갓난쟁이 손톱보다 더 작은 꽃에도 우주가 가득 들어앉아 있음을 배우며 수많은 잡초도 꽃을 피운다는 걸 알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어야 별이 더 잘 보이고

그런 밤에 노래하는 새가 있다.


비록 내 집도 아니고 내가 가진 것들도 아니지만 나는 친구들 덕분에 나이 듦이 무섭지 않고

가진 것 없는 내 인생이 루하지도 않다.

너무 행복하  말라는 듯 종종 숙제를 안기는 자식이 있고

우애가 넘치는 형제들이 주변에 있어 희로애락을 맛보게 해 준다.


잎클로버가 행운을 뜻하지만

잎클로버는 행복을 뜻한다 했다.

수많은 흔하고 흔한 세잎클로버가 나에게도 있었고

클로버 꽃향기가 얼마나 그윽한지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 삶의 향기가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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