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유치원 행사에 나는 또 늦었다.
무슨 이유로 늦었는진 모르겠지만
분명 남편의 일을 도와주고 정리하고 허둥대며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바르고 치장하느라 늦었었겠지?
그렇게 조금 늦게 무대가 있는 행사장에 아들을 찾아 옆자리에 앉고서 바라본 아들은
원복의 쟈켓은 어디 가고 없고 원복 와이셔츠 위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팔은 밖으로 나와있지 않고 안으로 넣은 채로 몸통을 지퍼로 대충 잠그고 앉아 있었다.
옷을 왜 이렇게 입고 있냐고 구명조끼 지퍼를 열어 팔을 빼주며 물으니
울먹이는 얼굴로 말한다. "엄마 너무 추웠어. 원복 겉옷을 유치원에 두고 왔는데 내가 실수한 거라 원장님께 춥다고 말을 못 했는데... 엄마 너무 추웠어"라고.
꿈이었다.
깊은 잠을 못 자는 요즘, 새벽에 깨었다가 더 자야 해 더 자야 해 하며 억지로 눈감고 있다가 설핏 든 잠에 꾼 꿈이었다.
꿈을 깨고선 추웠다는 아들이 한 말에 콧등이 매워지더니 눈물이 주체 없이 흘렀다.
아들은 이제 대학 졸업반이다.
대책 없는 시국에 큰 기대는 금물이며 졸업 후 계획은 안물안궁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참지 못한 몇 번의 어느 날마다 언쟁이 오갔던 이유는 졸업반이 되어서야 공무원 공부를 해보겠다고 해서다.
속으로 내 아들까지 캥거루족, 부모 등골 브레이커가 되겠다니 얼척이 없었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만난 어렸던 아들은 배려심이 깊어 행사 준비에 바쁜 원장님께 춥다고 말도 못 하는 속 깊은 아들이었고 늦게 도착한 엄마에게 짜증도 안 부리는 아들이었다.
그 작고 빼빼했던 아들은 지금은 고릴라처럼 자랐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은 인성 좋은 아들로 자랐는데
나는 취직 문제로 아들과 언성이나 높이고 부모 등골만 파먹는다고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
그 앞이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지만 성격상 지나간 일에 미련 두는 일은 없는데
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아이들 어렸을 때가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애들이 어렸을 때 밥 먹다가 흘리면 내가 야단을 쳤는지, 타박만 했는지, 흘리는 것도 귀여워했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응원하고 한없이 지지하는 엄마는 아니었을 것 같다.
아이에게 내 기준의 행동을 요구한 건 아닌지, 너무 매몰차게 키운 건 아닌지 후회만 남는다.
다른 건 다 내가 만든 현재의 내 모습이지만 딱 하나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시절이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많이 사랑해주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무엇보다 돈 버느라 버둥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싶다.
때 되면 친구가 더 좋아 떠나고, 세계가 넓어 떠나고, 좋아하는 이가 생겨 떠날 텐데.
나의 사랑으로 온 맘 다해 키울 수 있는 시간은 짧기만 한데
왜 그렇게 빨리 자라기만 바랐을까?
아들이, 딸이.
나 때문에, 앞으로 늙어가는 나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소멸에 더 가까워지고 있고
아이들은 활짝 피는 꽃에 더 가까워지는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