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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지는시간 Aug 15. 2021

늙음. 그 위대함

갱년기에 발목이 잡혀

나는 늙음에 호기로웠다.

늙어감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늙는 거?  그게 왜?  사람 다 늙는 거 아냐?  이러며...

그래

이건 다 늙음이 뭔지 겪지 않았기 때문에 했던 여전히 미성숙한 인간이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지껄인 말일뿐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고 일어나면 회복이 되고

베개에 머리만 대이고 누웠을 뿐인데 눈 떠면 아침이었던 수면의 질이 아주 좋았던 날들이,

살이 쪄도, 다른 운동 안 해도 몇 끼 굶으면 3킬로는 쉽게 빠지던

배둘레햄이 왜 생기냐며

나이 들어 살이  찌는 건 나잇살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속으로 운동하면 빠지지, 몇 끼 굶으면 빠지지, 복근 운동만 해도 저렇게는 안될 거다 했던  경험 해 보지 못한 시간 속에서의 자만감.


폐경이 오고

홍조, 불면증, 심장 두근 거림 같은 갱년기 증세는 없지만

갱년기를 겪고 있는 이 시간은 진짜 너무 속상하다.


한 끼를 굶는다는 건 내 몸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한 순간에 홀랑 날려 버리는 최악의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일임을.

잠을 자지만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 자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일어나 토막잠을 자게 되고

아무리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새벽 5시쯤 되면 정신이 깨버리고

몇 가지의 건강 보조기구들의 도움 없이 일어날 수 없고,

몇 가지의 건강보조식품을 먹지 않고서는 에너지는 가져보지도 못 할 것 같은 더러운 기분.


소화력도 떨어져 예전만큼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살은 자꾸 찌고

운동을 하려고 시작하면 며칠 만에 발목이 아프거나 무릎이 아프거나,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아파질 관절을 운동해 가며 더 빨리 나빠지게 하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걱정에

이제는 그냥 항상 하던 직장생활인데 오른쪽 무릎이 뻣뻣해져

내 몸이 늙어간다는 걸 온몸이 목도하고 있다.


갱년기의 시간은 내 맘대로 되던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함께의 시간은 없어지고

혼자의 시간만 점점 많아지고

노안의 눈을 대체해 주던 안경 렌즈도 1년에 한 번은 바꿔야 그나마 3인지 8인지 분간이 되니.


지나간 세월

내가 먹고 나를 키운 음식들

게을러서 대충 건너 띈 삼시세끼

어릴 적부터 쪼그려 앉아 일했던 집안 구조.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그래서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한 내 신세

남들보다 깔끔 병이 좀 더 심해

비틀어 쥐어짠 내 절들.


생각은 많아지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예전만큼 많은 일을 쳐낼 수도 없어

줄어드는 수입

이러다 나 폐지 줍는 노인이 되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


갱년기는 무섭다.

나는 쾌활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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