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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ug 19. 2024

시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건너뛸 수도 없다. 인간의 의지가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마치 도전장을 내미는 듯한 상상의 소재가 바로 '시간 여행'일 테다.


어떤 만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미지의 미래로의 탐험이든, 머나먼 과거로의 회귀든 시간 여행을 하면 그 장르는 명백한 '판타지'로 분류된다.


그런데 만약 내가 시간 여행을 경험했다고 한다면, 나의 말을 믿겠는가?


  

아, 졸업생이세요?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모교에 다녀왔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던 바이러스가 한차례 지나간 뒤로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방문이 드디어 성사된 것이다.


예전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학교였지만 졸업생의 신분으로 들어가려 하니 몇 가지 확인이 필요했다. 교문 앞 경비실에 가서 만나 뵈러 온 선생님을 말씀드리고, 통화를 한 후 신분증을 맡기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나의, 그리고 나의 친구들의 공간이었던 학교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교문을 지나서부터는 더 낯설었다.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꽤나 많은 것들이 모습을 바꾸었더라.


이동 수업을 들었던 별관 다목적실도, 친구들과 이동 자습을 하던 그룹 회의실도 사라졌다. 고3 때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보겠다는 핑계로 핸드폰에 예능을 켜두고 달렸던 런닝머신은 헬스장과 함께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들락거렸던 문구점은 사라지고, 3년 내내 밤 아홉 시면 달려가던 학교 매점이 그 크기가 두 배가 되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추억이 담긴 장소가 모습을 바꾸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워했던 고향의 모습이 기억 속의 그것과 다르다면, 결국 그 귀향이 미완으로 남는다는 국어 문제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슬픈 건 아니지만 미완의 귀향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고등학교 3년의 기억을 빼곡히 채웠던 선생님들께서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신 덕분이었다. 세 분의 담임 선생님을 비롯해서, 내가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영어 선생님들도,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당시에는 나름 즐겁게 들었던 일본어 선생님들도 모두 그대로였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정말이지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그제야 '우리 학교'로 온 기분이 들었다.


  

기억해 너를 위한 목소리


사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연초에도 한 번 느꼈었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온 마음 다해 좋아했던 대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만화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게임일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에는 그게 아이돌 가수였다.


새해 첫날, 나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그룹의 단독 콘서트에 다녀왔다. 2018년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이른바 5년의 '군백기' 이후 팀 이름으로 진행한 첫 콘서트에서 들은 그들의 목소리는 나를 단숨에 과거로 돌려보냈다.


내가 힘들 때 그들의 노래에 위로받고, 그들이 기쁠 때 내가 함께 즐거워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노래를 들으니 그때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시간 여행 : 관계의 불연속점이 만드는 틈 사이로 


물리적으로 시간 여행은, 그중에서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특히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시간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한 건 복잡한 과학기술도, 만화에서 흔히들 말하던 신비로운 마법의 힘도 아니었다.


내가 추억 속에서 다시 숨쉴 수 있게 도와준 건 바로 나의 그 시절을 채운 사람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간 여행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한 가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추억 속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금 내 하루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시기를 완성했던 사람들이 '추억' 속의 존재여야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인간관계에 대해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끝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렇다. 나는 관계의 끝맺음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나에게는 끝에 대한 철학이 두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모든 관계는 끝이거나, 이어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끝이 난다면 그 끝이 깔끔해야 한다, 즉 나쁘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사실 후자는 썩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모든 관계가 좋을 수는 없는데, 그래도 나는 누군가와의 인연이 끝날 때 서로에게 좋았던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 적어도 나쁘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미워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미움 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반면 전자는 한 번도 그 좋고 나쁨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다. 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지인을 '앞으로 쭉 연을 이어갈 친구들'과 '언젠가 끊어질, 잠시 아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었다. 명확하지 않더라도 그 분류를 해보려고 계속 노력했던 것 같다.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거리를 두곤 했다. 끝이 날 인연인데 착각해서 쓸데없이 정을 주고 상처 받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대로 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괜히 과하게 사람을 붙잡은 적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이제야 알았다. 오랜만에 만나도, 우연히 만나도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잠시 단절이 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은 나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잠시의 단절은 반가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모든 여행에서는 배워갈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촘촘하게 세운 계획은 오히려 부담을 준다는 교훈, 너무 헐렁한 계획은 여행지에서의 막막함으로 다가오니 어느 정도는 알아가는 게 좋다는 교훈, 인터넷 맛집의 신뢰도는 100%가 아니니 조심하자는 교훈.


이번 여행에서는, 모든 인간관계의 그래프가 연속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배워간다. 불연속의 관계였기에 할 수 있는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2023. 04. 2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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