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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CCO Jan 03. 2024

동양화의 화폭에 담긴 삶의 기운(氣運)

동양화는 무엇을 담고자 했을까?

‘미술美術’을 풀어 설명하면 ‘아름다움을 다루는 기술’이다. 이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화려한 명화 작품처럼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 것?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당신은 무엇을 미적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아름다움은 옛 미술인들에게도 언제나 큰 화두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 화두를 풀어내는 방식은 동양과 서양이 달랐다.


고대 서양인들이 아름다움을 정의할 때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기준점들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가령 인물을 그릴 때 외적인 모습을 똑같이 담아내거나 더욱 이상화된 비례를 따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식이었다.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벽화에 프레스코, 570×280cm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나 밀로의 비너스에서도 인물이 이상적인 비례나 우아하고 건강한 신체로 표현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세계는 달랐다. 동양미술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가 아닌,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주목했다. 따라서 자연스레 그리는 대상이 아닌, 표현의 주체인 창작자가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창작자 각자의 삶이나 가치관에 따라 자연스레 표현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옛 동양미술의 주된 창작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문인이었다.


문인을 ‘선비’로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비라는 좁은 개념과는 다르다. 학식, 교양, 인품에 더해 예술적 소양까지 갖추고 있던 인물이 문인이었다. 근대기 이전까지 동양의 문인은 사상가, 시인, 문장가, 교육자, 또는 정치가인 경우가 많았다. 문인들의 그림인 ‘문인화文人畵’는 산수화, 풍속화, 인물화와 함께 동양화의 대표적인 장르다. 학문을 기본 바탕으로 하되, 고결한 인격과 높은 교양을 두루 겸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문인이 그리고자 한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동양미술에는 인격, 교양, 학식과 더불어 각자의 삶의 태도, 삶의 가치 등을 종합하는 말로 ‘기운氣’이라는 용어가 있다. 문인들은 이 기운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다시 말해 각자의 삶의 전반에 대해 담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기운을 담아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대상일뿐더러 그림의 내용까지 자칫 모호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동양화를 비교적 낯설게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인들은 기운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했을까? 우리가 동양화를 떠올리면 흔히 등장하는 소재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매화, 난, 국화, 대나무인 매·란·국·죽의 ‘사군자’다. 문인들은 자신과 자신의 삶 속 기운을 표현하기 위해 사군자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가령 매화는 쌀쌀한 계절에 꽃을 피우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등 이러한 사군자의 특징은 문인의 절개와 고고함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세한도>로도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또 다른 작품에 <불기심란도不欺心蘭圖>가 있다. 그림 속 난초는 문인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은 식물이다. 어느 조건에서든 금방 죽지 않고 그 자체로 황홀한 향기를 내뿜는다.


추사 김정희, 불기심란도不欺心蘭圖, 지본수묵     


‘불기심란’이란, 난초를 그리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작품의 우측 글에서도 이러한 다짐이 나타난다.


“(...) 난초를 그리는 것이야 어찌 보면 작은 재주이지만 반드시 진실로 생각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 기본을 아는 것이다.”


<불기심란도>에서 난초는, 김정희가 그림을 그릴 때의 마음가짐을 드러내기 위해 언급한 예시이자 동시에 그 고고한 다짐을 보여주는 표현의 방식이 된다. 이것이 곧 김정희가 표현하고자 했던 기운이었다.


삶의 기운을 잘 표현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옛 동양인들의 미술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대상을 미적으로 재현하는 일이 중요했던 고대 서양인들과는 다른 관점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며 문인들이 일구어냈던 동양미술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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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예코 김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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