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에서 알아본 비움의 미학
우리는 물질적 풍요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채움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서 ‘더’보다 어려운 것이 ‘덜’인 듯하죠.
그렇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비움에서 쓰임을 찾았을까요?
왼쪽 사진은 조선의 백자대호입니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이 백자는
온기가 느껴지는 듯한 따스한 흰색이 장식의 전부입니다.
화려한 문양이나 색채는 찾아볼 수 없지만, 결코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미련 없는 비움이기에, 수련하고도 포근합니다.
성리학의 가르침을 따르던 조선시대의 사방탁자.
사방이 트인 구조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선비의 검소함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깨끗한 심성의 비움입니다.
전통 가옥의 마당은 비움을 통해 세상을 끌어안습니다.
대문 앞 바깥마당을 통해 들어오면, 행랑마당과 사랑마당을 지나게 됩니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안채 앞 안마당이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샛마당이 자리합니다.
마당을 통해 바람과 햇살이 드나들고, 사람이 오가죠.
실내로 들어가는 길목의 마루도 마찬가지입니다.
툇마루는 마당과 채를, 대청마루는 방과 방을, 누마루는 인간과 자연을 비움으로써, 잇습니다.
전통가옥의 마당과 마루는, 낮은 담장과 더불어
가옥과 바깥세상을,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주변과의 조화를 꾀했습니다.
흔히 어른들이 음식에 대해 하는 최고의 칭찬이 "담백하게 맛있다."이라고들 하죠.
맑을 담(淡) 자와 흰 백(白) 자의 '담백'.
불필요한 맛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비움을 통해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조화로운 맛을 표현합니다.
재료 하나하나의 본연의 맛에 빛을 비추는 것이지요.
동양화의 여백의 미(美)라고들 하죠.
채움의 흔적을 제한 여백은 화폭을 옹골지게 채웁니다.
서양화에서 여백은 미완성의 징표인 반면,
동양화에서의 여백은 존재 자체로 또 하나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때 산수화에서 이야기하는 의경(意境) 개념에서는
비움을 화폭 삼아, 채움의 흔적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경치를 상상합니다.
오히려 더 많이 열려있기에, 더욱 풍요롭게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아직 채우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것이지요.
마음이 가는 대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비움의 행위는 물질적인 세계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까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하는,
초월적이고 해방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우리 선조들은 삶을 '비움으로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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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심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