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지도, 냄새도 맡지 말았어야 했던 그곳
나는 경기도 토박이다. 안양에서 태어났고, 중간에 잠시 몇 년간은 강원도 춘천을 경유하긴 했으나 다시 경기도로 기어올라가 유년과 학창 시절을 모두 그곳에서 보냈다. 초-중-고 생활을 모두 안양-수원-의왕을 오가면서 보냈는데 대학만큼은 다르고 싶었다. 나에게 주어진 두뇌 용량과 지식적 한계, 그리고 환경 등등은 나를 4로 시작하는 유니버시티(University)가 아닌 2로 시작하는 컬리지(College)로 이끌었다. 그래도 인서울은 했다. 결과값은 다르지만.
서촌에서 시작된 대학 생활, 공학을 다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나름 싱그러운 여대 시절은 나름 행복했었다. 물론 학자금 대출을 갚을 때는 대학 왜 갔지? 가 디폴트로 떠오르는 불만사항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만나는 서울 토박이들, 그리고 토박이들이 알려주는 서울의 신세계들... 물론 토박이들은 '이게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거다. 근데 경기도에서 두 자릿수가 다 돼 가는 삶을 살며 끽해봤자 범계 로데오와 수원 남문/북문 거리가 유일한 핫스팟이었던 나에게 종로나 녹사평 일대가 주는 활력은 정말 남달랐다.
학교 주변만 거닐어도 나오는 딜쿠샤와 홍난파 가옥, 박노수의 미술관, 그 외에도 예술가들의 개인 갤러리들, 키치하고 멋스러운 카페, 공장 지대 없이 맑고 새파란 하늘, 그냥 걸을 때마다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컨텐츠들이 나의 바싹바싹 마른 감성을 조금씩 적셔주었다. 그리고 미슐랭 별이 딱딱 박혀있는 레스토랑도, 심심하면 광화문 가고 옷 사고 싶으면 명동 가고 좀 쑤신다 싶음 한옥마을 갔다가 갤러리 돌고 마지막으로 내자동에서 술 한잔씩 짠짠, 걸어서 어디로 엎어지든 원하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메리트였다.
그렇게 사회인이 된 나는 어느덧 또 경기도에 알을 박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도 경기도고 거주지도 그에 따라 경기도로 결정되었다. 2년간의 일루전을 조금 걷어내고 눈 떠보니 또 안양이었다.(어? 눈또안...) 그래도 퇴근하면 최대한 빠른 스피드로 전철로 뛰어가 영등포를 가고, 금요일이나 주말엔 종로까지 또 뛰었더란다. 안주마을도 그대로였고, 계단집도 수요미식회 이후로 사람이 많아진 것 빼면 옛날 그대로였다. 행복했다. 이제 진정한 내 돈 내산의 시대~ 돌아서면 후회할 테지만 학생 때보다 더 많이 쓸 수 있었다. 쓴 만큼 누리는 서울에서의 문화생활이 좋았다.
그리고 n년 뒤, 나는 '또'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눈을 뻐끔거리며 옥인연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유튜브로 서울 여행을 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구해줘 홈즈' 서울 편들을 보며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 매매 가격대를 보고 남편과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비빌 수 있거나 더 하위인 가격대의 매물이 나왔다 해도, 네이버 지도로 해당 매물 근처를 싹 훑고는 '뭐야;' 소리를 연신 내며 눈을 감아댄다. 남편 또한 경기도 토박이다. 그는 심지어 안양 토박이다... 우리가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서로 무언의 텔레파시를 나누며 쳐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저어 본다.
언젠가부터(사실 오랫동안...) 그와 나는 서울쥐를 꿈꾸고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뒤로 우리는 부동산 앱을 잘 켜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싹 내려가는 시기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저 위에 있는 두 자릿 수의 신축이 더 맛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쯤까지 써 내려갔으면 경기도가 싫니? 이럴 수도 있지만, 너무 어릴 적부터 살고 겪다 보니 거기서 오는 권태로움을 차마 피할 수가 없어서 이런 글을 쓰는 걸 수도 있다. 잘 찾아보면 이곳도 좋은 곳이긴 하다. 하지만 이 수도권쥐는 언젠가는 서울쥐가 되겠다는 야망을 접지 않으려 한다. 이거라도 캔들 녹이듯 잘 녹여 내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원동력을 삼아야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