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이 떠난 한 청년의 이야기
가요계에서
요절한 천재를 이야기한다면
가장 가슴 아픈 인물은
유재하이다.
1987년, 11월 1일 새벽
친구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같이 타고 있던
25살의 천재 작곡가 유재하는
그 날,
우리 모두의 가슴속
별이 되었다.
이 곡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인
그해, 8월 20일에 발매된
그의 유일한 앨범이자
유작에 실린 곡이다.
어수선하고 흥겨웠던 캠핑은 마무리되고
여운에 아쉬워
아직 잠자리에 들지 못해 자리를 지키는 두어 명의 친구들.
술이 거나한 녀석 하나가
별빛 가득한 밤의 고요를 타고
불쑥 들려줄 거 같은 그런 이야기.
가리워진 길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노래를
소위, 가창력 뛰어나다는
누군가가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당시, 가수가 TV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담당 PD에게 가창력 테스트라는 걸 받아야 했다.
유재하는 번번이 그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매번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가수의 가창력은 무엇일까?
시원하게 질러주는 고음과 힘있는 발성
정확한 음정과 섬세한 감정 표현?
가사와 멜로디에 대한 분석과 해석 능력.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가수의 노래실력을 채점하며
듣지는 않는다.
노래하는 이가 소리로 담은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다.
[ 가리워진 길 ]은 노래이기전에
음악에 담은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이제 막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모든것이 낯설고 두려운 한 청년의 이야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속내를
소박하고 덤덤한 심정으로 누군가에게
쑥스러운 손을 내밀며
용기내어 하고 싶었던
그런 이야기.
이 앨범에 실린 대표곡,
[ 사랑하기 때문에 ]와 [ 가리워진 길 ]은 유재하가
이미 그전에 작곡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인,
가왕 조용필과 가객 김현식에게 주어
앨범으로 발표된 곡이다.
[ 사랑하기 때문에 ]는 1985년에 발매된 가왕 조용필의
7집 앨범에 수록된 것이 최초의 버전이고
[ 가리어진 길 ]은 1986년 12월에 발매된 가객 김현식의 3집에
발매된 것이 최초의 버전이다.
가창력이라면
당시,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두 가수의 노래와
유재하의 노래를 조각조각 내며
이러쿵 저러쿵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작사, 작곡, 편곡,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혼자 해 낸 최초의 앨범.
클래식 편곡을 진지하게 가요에 적용하여
완성한 가요 최초의 앨범.
2018년. 여러 매체에서 공식적으로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위로 선정한 앨범.
등등을 뒤로 물리더라도
많은 대중음악 평론가들과 음악가들은
한국가요의 역사를
[ 사랑하기 때문에 ]가 발표되기 전과 후로 나누기도 한다.
무엇 때문일까?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온
한없이 섬세하고 세심한 어떤 청년이
그에게 다가 올 거칠고 거대한 이 세상의 풍파를 향해
자신의 불안한 속내를
진실된 소리에 가득 담았다.
우리는 그의 진실된 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