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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 정미조 / 37년

사서 들어야 할 결심.

by XandO

호주머니가 넉넉치 못하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다른 건 몰라도

카세트테이프와 음반들은 끊임없이 물어다 날랐다.


음반들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던 시절

그나마 어렵게 구한 정보로

고르고 고른 명반이라는 앨범들도

취향에 맞지 않은 적이 많아,

정보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도 하던 방황의 시절.


그래도 한동안을 그렇게 꾸준히 주워다 날랐다.


그리고, CD와 MD 등을 거쳐 MP3에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것이 대중화되면서

한 달에 돈 만원이면 수십, 수백만 곡을

이것저것 뒤져서 들어볼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신보가 나오는 족족 다 들어볼 수 있다.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사다 날랐다.

이걸 안 산다고?

이건 진짜 사둬야 해!


내게는 참 그럴싸한 변명이 있다.

나의 대중적이지 못한 취향 덕분에

좋아하는 책이건 음반들은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절판되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자기 합리화.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 철이 든 건지

"에이, 뭐 이렇게 들을게 많은데~

스트리밍으로 듣지 뭐~"

하는 생각으로 음반 구입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달에 꾹꾹 참아도 3-5장은 사던 시절을 지나

1년에 많아야 10장 미만으로 줄였으니까.


그리고 2016년 어느 봄!

어라! 이건 뭐지?

이건 사야 해!


1. 개여울 - 정미조 / 37년

1922년, 소월 김정식 선생이 발표했던 시에

1966년, 작곡가 이희목 선생이 곡을 붙였다.

당시, KBS 전속가수였던 김정희 선생에 의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 뒤로도 여러 가수들에 의해 사랑받으며 불려졌다.

그리고, 트로트의 열풍에 밀려 기억에서 멀어진 곡이 되었다.


그리고 5년 뒤,

이화여대를 졸업한 한 여학생에 의해

[ 개여울 ]이 다시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정미조.


그녀는 [ 개여울 ]로 시작한 7년간의 화려한 디바로서의 활동을 돌연 뒤로하고

프랑스 유학길을 택한다.

프랑스 제7 대학 미술학박사로,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로,

그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미술대학교수로,

전혀 다른 길을 걷던 그녀.

2016년 어느 봄날,

37년 만에 [ 개여울 ]을 손에 들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이 앨범은 < The Near East Quartet >으로 ECM에서 앨범을 발매한 이력을 가진,

재즈색소포니스트 손성제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다분히, 현대적인 재즈 스타일들을 총 망라한 음반이다.

탱고를 상징하는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비브라폰 연주자 이희경,

기타리스트 정수욱과 박윤우, 피아니스트 김은영 등

국내 최고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앨범의 예술적 완성도를 끝까지 끌어올린다.

특히, 손성제는 총괄적인 앨범의 프로듀싱은 물론

대부분의 곡에서 작곡과 편곡을 담당하였으며

국내 대중음악 음반에서는 쉽게 듣기 힘든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로 첫 트랙 [ 개여울 ]을 통하여

지난 37년이 담은 인생의 깊이와

예술적 성숙함을 더욱 깊이 있게 채워 넣는다.

인간의 삶과 세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숙고의 시간을,

긴 예술의 시간과 지난 온 삶의 여정으로

진솔하게 살아낸 한 여인의 세월을

소리로 담아낸 명품 리메이크이다..


모든 트랙들이 무엇 하나 지나칠 수 없는 트랙들이지만

세 번째 트랙 또한 걸작이다.

[ 인생은 아름다워 ]는 반도네온이라는 독특한 악기의 음색과

역시나, 정미조의 깊지만 무겁지 않은 목소리가 밀고 당기는 듯

삶의 희로애락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2. 인생은 아름다워 - 정미조 / 37년

프로듀서인 손성제가 작곡을 하였고

이주엽이 작사를 한 뼈대에

고상지의 반도네온이 탱고의 살을 입혔다.

탱고라는 음악이 가진 특유의 애잔함과 리드미컬함이 어우러져

탱고를 추는 무희의 밀롱가 드레스 치맛자락이

듣는 이의 귓가를 타고 넘실대는 춤사위를 이어간다.

삶과 음악 그리고 예술로 원숙해진 정미조의 목소리는

먼 나라 탱고의 이국적인 느낌을

더없이 친근한 “세월의 찬가”로 다시 써냈다.




세월이 빠르게 변해간다.

음악을 듣는 방식도 참 많이 새롭다.

라디오에서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LP,

CD가 나오고 MP3를 거쳐

이젠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 영상으로

더 쉽고 편하게 음악을 즐긴다.


이젠 음반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음반시장이 빠르게 죽어간다고들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인정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소비의 형태는 변했고

계속 또 다른 형태로 변해 가겠지만

그래도

아직 사고 싶고 가지고 싶은 음반들은

분명히 있다.


호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질 망정

37년 정도의 긴 세월과 깊은 예술을 덕지덕지 묻히고 나온 [ 37년 ] 같은 음반이라면 언제라도

내 궁색한 호주머니를

선뜻 열어줄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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