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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열,

-세상이 아닌 세상-

  

위트릴로,

2주일 전이었습니다. ‘마음의 창’ 수강생인 우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아하는 문구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마음의 창’은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시·수필 창작 강의입니다. 우님은 첫날,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지요. 


“저는 꽃과 바람과 나무를 좋아합니다. 내 짝도 참으로 좋아하지요. 이제 봄꽃들이 많이도 피고 있는데 저는 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꽃만 보면 내 짝이 생각납니다. 내 짝지가 세상을 떠난 지 오늘이 딱 백일이 되는 날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겠고, 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예전과 같이 맑지가 않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우님은 그 짧은 소개를 하면서도 우셨지요. 첫 수업을 끝마친 뒤 우님은 저한테 다가와서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조경학 박사입니다. 강단에도 오랫동안 섰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뭔가, 머릿속에 어둠이 꽉 들어찼어요.”



저는 분명 좋아질 거라고, 많이 힘들겠지만 딛고 일어서게 될 거라고, 곁에서 응원 드리겠다고 했지요. 우님은 단 한 번도 결석하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째 자리에 앉아서 한 눈 파는 법도 없이 줄곧 진지하셨지요. 쓴 글을 발표하자고 하면, 늘 아내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날, ‘상처가 스승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낭송한 뒤 느낀 점을 쓰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우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싣고 있다가 / 그 이상이 되면 미련 없이 비워 버린다’라고 시인이 썼듯이 내 아내도 이 세상에서 감당할 것을 다 한 뒤에 홀연히 미련 없이 연잎이 빗방울을 떨구듯이 미련 없이 가버렸나 봅니다. 그러니, 나도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내려고 합니다.> 



나는 모두 큰 박수를 보내드리자고 청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우렁차게 박수를 보내자 아마도 우님은 속으로 싱긋 웃으셨을 테지요. 그 우님이 좋은 문구를 달라고 하시다니요! 우님은 서각을 배운 지 2년이 되었다며, 문구를 작품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황송한 마음에 거절하려고 했지만, 간곡한 눈빛이 고스란히 전해져왔습니다. 결국, 감사하다고 하면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지요. 이 문구는 제 영혼에 늘 새겨져 있는 빛나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  



도대체 이 구절을 알려준 이는 누구였을까요? 저는 어디에서 이 글을 만나던 걸까요? 성경 요한복음 17장 16절에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이다.’는 구절이 있지만, 이와 똑같은 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십칠 년 전, 우연히 마음속에서 떠올랐고, 삼 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 깊이, 혹은 영혼의 정중앙에서 빛처럼 존재해오던 말씀입니다. 어느 책에서 봤던 걸까요? 누구한테 들은 것일까요?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구절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를 정도입니다. 절대 빛바래지지 않도록 제 영혼 한가운데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말대로 살아왔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세상사에 따라가지만, 세상 밖에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혹은 세상 밖으로 제 마음을 자주 풀어놓아 둡니다. 그런 까닭에 제대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 말은 제가 살아가고 삶을 견뎌내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우님은 한 2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다음 주에는 세로가 좋겠는지, 가로가 좋겠는지, 혹은 글씨는 어느 체가 좋겠는지 자세히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잘 모르니 알아서 해달라고 했지만, 은근히 끄는 글씨체가 있기에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2주가 지난 5월 11일. 우님은 신문지로 돌돌 만 병 하나와 서각판을 수줍게 내미셨습니다. 



“집에서 직접 짠 참기름입니다. 그리고 이 서각은 은행나무로 만든 거예요.”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 귀한 문구를 이렇게 눈으로도 만나다니요! 나무를 파느라 손이 아프지 않으셨는지 여쭤보았지만, 우님은 괜찮다며 고개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너무 귀한 선물이어서 또 은근짜한 의문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내가 이런 선물을 받을만한 존재인가, 과연? 

좋은 곳에 가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받게 되면, 늘 이런 의혹이 슬며시 고개를 들곤 하지요. 그럴 때, 옆에 샨티윤이 있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선배님, 그건 제가 주로 쓰는 제 말이거든요! 그럼, 저는 이렇게 응답하지요. 우린 이럴만한 존재가 맞아! 그치? 



위트릴로,

이 귀한 선물을 심상 시치료 센터 개인 치료실 안에 걸어두었습니다. 제 자리가 아니라 내담자의 눈에 보이는 자리에요. 치료를 받으러 오는 분들은 이 문구에 저절로 눈이 가게 될 겁니다. 이 말씀이 가진 우주의 에너지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뜻깊고 기쁩니다. 너무나 절묘한 선물이어서 그대께 보여드리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세상에 버젓하게 있지만, 동시에 세상에 결코 속하지 않는 까닭에 나는 주로 나를 이 세상 밖으로 내보냅니다. 다른 세상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과 좌절까지도 감사합니다. 우님은 작고하신 아내에 관한 글을 계속 쓰고 있지만, 발표할 때마다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티슈를 건네드려야 할 정도로 우시던 모습에서 이제 물방울을 탈탈 털어내는 연잎처럼 울지 않습니다. 애써서 참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꼬들꼬들하게 잘 말라가고 있는 듯합니다. 제대로 다 마르면, 그곳에서 다시 새싹이 날 거라고 믿습니다. 우님은 백련 씨를 한가득 가져와서 수강생분들한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제1회 아코디언 상을 받은 제 졸작 소설 ‘티아, 오 티나!’를 함께 읽고 난 뒤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지요. 



“소설이 이렇게나 쉬워요? 소설은 저 높고 고귀한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요. 이렇게 속말을 털어놓아도 된다면, 나도 쓰겠는걸요!”



위트릴로,

이거야말로, 제가 제대로 강의한 효과인 듯합니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진흙탕 안이지만, 세상 속에 있지 않은 탓에 세상을 글로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감사한 마음에 서각작품을 걸어둔 센터로 초대를 했는데 우님은 이렇게 거절을 하셨습니다. 



“제가 밖에서 누굴 만날 수가 없어요.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닙니다. 제 동생이 아주 오랜만에 온다고 해서 그걸 차마 거부하지 못해서 오늘 오기로 했고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러려고 드린 게 아닙니다. 아직은 웃을 때가 아닙니다.” 



위트릴로,

2주 전 수업 시간에 우님은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황순원의 장편(掌篇)소설 ‘탈’을 읽고 나서 영혼과 대화를 나눠보자고 했을 때였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가 자신더러 많이 웃으면서 지내라고 한다며, 즐겁고 행복하게 활짝 웃으며 지냈다가 다시 만나자고 했다며 쓴 글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님은 아직 웃음을 보류하고 계십니다. 먼저 간 아내한테 미안해서일까요? 



위트릴로,

마음의 풍광을 오롯이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의 창을 닦는 프로그램인 ‘마음의 창’에서 상실의 과정을 현명하게 딛고 일어설 우님을 위해 기도드리는 마음을 보태어 이렇게 편지를 남깁니다.


 

-2023. 5. 15.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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