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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Dec 23. 2024

[호모룩스 이야기-18] 불꽃이 된 은행나무



불꽃이 된 은행나무

                

시아          



  라디오 방송 ‘출발 FM과 함께’의 11월 19일 오프닝 멘트는 시 한 구절이었다. 인용된 부분만 캡처해서 보내주니 상대는 이렇게 물어왔다. 상처 회복에 관한 시인가요?


  이문재의 시 ‘시월’이라는 시 전문을 보자. 그래야 답할 수 있으리라.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 은행잎을 떨어트린다. /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 노랗게 말랐으니, 뿌리의 반대켠으로 /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내친김에 이 시를 수업 오프닝 멘트로 삼았다.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선율을 배경으로 삼아 한 학생한테 낭송해보라고 했다. 강의실은 삽시간에 ‘노오랗게’ 번져 올랐다. 결국은 투명해지기 위해 노랗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잎을 떨어트린다. 나뭇잎들은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을 결단코 주저하지 않는다. 안타까워서 조금만 더 있으라고 주문을 걸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스치는 바람의 손길에도 왈칵 지고 만다.      


  아직도 물들지 않는 은행잎이 있던가? 시월에는 간혹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그 속이 시린 시월’이라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채 다 잊었다고 태연한 척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속은 노랗게 멍들어있다. 그걸 숨기느라, 숨겨야 살아낼 수 있어서 잠자코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물이 든다. 물들지 않더라도 떨어지고 만다. 무성했던 상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살아가는 동안 말랐던 그것들은 ‘뿌리의 반대켠’인 우듬지, 있는 힘껏 길어 올려 하늘과 마주한 곳까지 타오른다. 타오르다가 그 ‘정점’에서 장렬하게 산화된다.        

  그 놀라운 가벼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노랗게 불타오른 시간은 고스란히 각인된다. 색과 빛을 벗어던진 은행나무들은 고요하다. 중력이 따간 흔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선연한 빛깔로 불타오르는 은행잎은 이제 다른 차원에서 만날 수 있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인간군상이 있는 삼차원에서는 오로지 자욱할 뿐이다.


  그러니, 도대체 이 시는 상처 회복인가? 섭리와 순응인가? 세월의 흐름에 대한 위로인가?

절묘한 배경음악처럼 시의 강이 당신에게로 흘러가고 있다. 또 다른 시 ‘큰 꽃’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꽃은 지지 않는다 /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 더 큰 꽃을 피워낸다 / 나무는 꽃이다 /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 

  잎을 거의 떨군 11월의 은행 나무한테 박수를 보낸다.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불꽃이 되었다고.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 위 글은 2024년 11월 25일자 <뉴스 아이즈>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https://newseyes.net/news/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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