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단체는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가
“설문 조사 하나만 해주세요”
집에 가는 길 한 청년이 웃으며 스티커 하나를 건넸다. 청년이 입은 파란 조끼에는 유니세프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유니세프 스태프인 그는 보드 앞으로 인도했다. 보드 위에는 4장의 아프리카 아이들 사진이 있었다. 가뭄에 갈라진 땅을 걷는 아이부터 부모를 잃고 홀로 생활하는 아이까지.
가장 돕고 싶은 아이를 고르라는 말에 나는 홀로 생활하는 아이 사진 밑에 스티커를 붙였다. 아프리카 기아, 열악한 의료 인프라. 겪는 상황은 비슷한데 보호해줄 부모조차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설문 조사를 마치자 스태프는 이 아이를 돕기 위해 후원을 해줄 수 있냐고 권유했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최종 선택 버튼만 남긴 상황. 나는 계속해서 느끼던 찜찜함에 결국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찜찜함을 느꼈을까?"
집에 돌아와 고민해보니 이는 ‘불신’이었다. 후원한 기부금이 아이들에게 전달돼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 2023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를 한 사람 비중은 23.7%로 10년 사이 10%p나 줄었다. 기부를 하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불신’이 꼽히기도 했다.
이렇게 기부 단체를 불신하게 된 것에는 단체 운영 과정이 불투명한 탓도 있지만 기부금 황령, 비용 과잉 등 사건들이 크게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2013년 류종수 전 유니세프 사무총장은 자신의 차명계좌로 기부금을 횡령했고 이어 2018년 서대원 전 사무총장은 출장 중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타는 등 기부금을 과도하게 사용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사건들이 겹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불미스러운 논란들을 해소하고자 2019년부터 기부금 명세서 등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 호텔, 맘스터치 등 숙박비, 식비에 사용된 내역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내 기부금이 투명하고 잘 이용되고 있다고 느낄지는 의문이다. 기부자들 대다수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사용되기를 바라며 기부금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신 문제가 앞으로 지속된다면 피해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아닌 아프리카 등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당초 기부 단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해외 어려운 지역에 구호 활동 등을 통해 돕기 위함이 아닌가. 식량농업기구(FAO) 등 유엔 5개 기관이 발표한 ‘2024년 세계 식량 안보 및 영양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약 7억3340만 명이 기아로 고통을 받고 있고 이 중 20%가 아프리카에 집중됐다. 아프리카 뿐만이 아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아주 많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비롯해 수많은 기부 단체들은 아프리카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들 사진을 내건 부스를 늘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기부할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부금 사용 내역만 공개한다고 사람들의 신뢰가 높아지지 않는다.
먼저 대다수 기부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법인 운영 지출부터 설명이 필요하다. 호텔 숙박에 큰 돈이 사용됐다면 몇명의 인원이 어떤 구호 활동을 하기 위해 이용했는지 등 세부적 내역을 적어줘야지 기부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외 구호 활동에 사용된 금액이 어떻게 책정됐고 어떻게 도움을 줬는지 등을 기부자들에게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부 단체들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 믿고 기부할 수 있게 된다면 길거리 유니세프 등 부스는 기부를 설득하는 공간에서 기부를 하기 위한 창구로 변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