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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살기연구소 May 30. 2023

저출생과 성불평등

우리나라 저출생의 근본적 원인은 성불평등이다

2006년 『유엔인구포럼』에서 저명한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당시 우리나라 출산율은 1.13명)이 지속되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번째 인구소멸국이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전망은 변한 게 없다. 콜먼 교수는 최근 한 학술행사에서 방문할 때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놀랍다면서 ‘한국다운 것’이 변해야 저출생 문제가 풀린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2023년 5월17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콜먼교수를 초빙하여 학술행사를 개최하였다

콜먼 교수가 제기한 ‘한국다운 것’에는 과도한 근로문화, 과열된 교육환경, 낮은 성평등지수, 가부장적 가족주의, 동거문화와 비혼출산에 대한 폐쇄성 등이 포함된다. 이 요소들 각각은 그 자체로 이미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제도와 실천들이 노 교수에게는 이미 한국다움으로 비춰지기에 씁쓸함이 크다. 그럼에도 이 요소들이 후대들의 태어남을 방해하고 있다는 평가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노 교수의 지적은 우리나라 저출생의 원인들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여러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위 5가지의 ‘한국다운 것’은 각각이 저출산을 유발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이 요소들은 성불평등을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각 요소들은 성불평등 외에도 다른 세부구성요소들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성불평등 자체이거나 성불평등을 야기하거나 또는 그 결과로서 형성된다.


성평등지수는 우리나라의 성불평등의 현실을 수치로 보여준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GGI)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146개국 중 99위이다. 2019년 기준 유엔개발회의(UNDP)의 성개발지수(Gender Development Index,   GDI. 여성의 인간개발지수(HDI)를 남성의 그것으로 나눈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양성 간의 완전한 평등이 이뤄짐)는 0.936으로 인간개발지수 (HDI)의 최상위권 국가 62개 중 57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양성평등 관련 사회제도지수(SIGI)는 2019년 기준 조사대상 90개국 중 51위이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하는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는 매년 꼴찌를 하고 있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의 세부현황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하며, 그래야만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성원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부모는 이를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차서 넘치는 교육열은 현실에서는 누구를 통해 발현될까? 바로 수많은 엄마들이다. 대치동 학원가의 엄마를 포함해, 전국 어디에서든 교육 뒷바라지의 책임을 지고 매일매일 뛰어다니는 엄마들이다. 한 때 유행하던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중 엄마의 정보력만이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엄마의 모습을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자아를 실현하기에도 바쁜데 아이를 위한 이러한 활동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엄마에게 부과된 자녀 양육과 교육은 역할배분이라는 미명 하의 성불평등이다.


노동이 중시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과정에서 펼쳐지는 관행들은 여성차별적이다. 우리나라의 노동관행은 1년 평균노동시간이 190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 음주가무가 곁들여진 회식, 회사 간 계약과정에서 중시되는 접대, 회사 내 파벌 및 줄세우기 등이다. 노동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이 모든 관행에 순응하고 관행의 이행에 있어서 남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임신, 출산, 영아 보육 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2-3년이 걸린다. 앞서 말한 노동관행을 이 기간에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임신 상태에서 야근을 하거나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은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이 당연하다. 결국 우리나라의 노동관행은 여성에게 철저하게 불리한 것들이며, 이 관행 속에서 여성이 살아남으려면 출산은 포기하는 것이 보다 손쉬운 결정이 되어 버린다. 


우리나라의 결혼제도도 여성에게 차별적이다. 보통 결혼은 여성이 남성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은 남성의 가족구성원들과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며, 비록 법률이 아닌 관행이기는 하지만 여성은 남성의 족보에 등록된다. 아내는   시부모의 눈치를 보며 가정생활을 해야 하고 애는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을 직·간접적으로 들어야 한다. 결혼이   여성에게 부과하는 암묵적인 의무들도 상당하다. 따라서 여성에게 결혼은 스스로가 성차별적인 구도로   들어가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포기이다. 2021년 기준으로 배우자가 있는 부부들 중에 46.3%가 맞벌이 부부였다. 절반 이상의 여성이 이러한 포기상태로   들어갔으며, 경력단절 사유로는 육아(43.2%), 결혼(27.4%), 임신 및 출산(22.1%)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중섭은 최근의 결혼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가족구성 방식에 대해 논의한다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결혼이 아닌 가족구성의 다른 방식들을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성이 만나서 함께 살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방식은 기존의 결혼, 즉 법률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법적인 권리와 의무도 부과되지 않으며 순전히 개인들의 선택에 의해 이뤄지는 동거도 있다. 이러한 동거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법률혼에 의한 부부와 동일하게 보장해주지만 법적 의무는 인정하지 않는(따라서 연대보증의 의무가 부과되지 않으며 재산도 각자 관리한다) 방식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 방식을 Pacs(법적 동거)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법률혼의 방식이 아닌 다른 가족구성방식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이 또한 성차별적 요소들이다. 선택할 여지들이 있는 것임에도 사회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결혼(법률혼)을 강제하는 것이며 이는 곧 남성 위주의 가족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의 표명일 뿐이다.






결혼의 이러한 어려움들은 결국 비혼출생을 축소시킨다. 결혼에 대한 강조가 크다 보니 동거나 Pacs와 같은 가족구성방식에 의해 낳은 아이들, 즉 비혼출생아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강하다. 비혼출생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기에 비혼출생아에 대한 지원도 크게 부족하며, 이를  감내하는 것은 주로 엄마들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비혼출생의 비중은 전체 출생 중 대략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유럽 선진국의 경우 비혼출생은   출생률 회복의 핵심 요인으로 전체 출생 중 대략 1/3 정도를 차지한다. 출생률 회복의 대표격인 프랑스는 거의 절반에 이른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결혼에 대한 경직된 관행과 이에 다른 비혼출생에 대한 불인정은 출생률의 커다란 장애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성불평등이라는 똬리가 틀어져 있다.


이처럼 저출생은 여성차별과 성불평등이란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그렇다고 이를 눈에 보이는 현상 차원에서만 다뤄져서는 안 되며,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과 남성은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욕구와 필요들을 거의 동일하게 갖고 있다. 성불평등은 동일한 욕구-필요체계를 본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일부의 충족을 억누르라는 사회적 압력이다. 이러한 압력은 본래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러하도록 만드는 소위 사회적 구성물이다. 이는 곧 시공간에 따라 이 사회적 구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이 바로 그러하다.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불평등한 것들은 과거에는 통용되었지만 우리사회의 발전으로 오늘날에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충분히 이해되는 바가 있다. 유엔개발회의(UNDP)의 성불평등 지수(GII)는 2020년 기준으로 세계 11위이다. 이 지표는 해당 국가가 여성의 역량을 얼마나 ‘개발’되었는지를 측정하는 것으로, 여성의 역량개발이 얼마나 남성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평등한 지를 측정한다. 우리나라는 여성의 역량개발에 있어서는 매우 앞선 나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여성에게 더욱 커다란 실망, 특히 희망고문을 안겨준다. 역량이 없다면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 욕구 등의 충족을 덜 추구할 것이지만,   이미 역량이 충만하기에 더 강하게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노동·교육·결혼·가족 등의   영역에서의 성불평등이 만연하기 때문에, 이를 실현시킬 방법이 별로 없다. 따라서 기대를 채울 수 있는 영역이나 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 심하게 되며,   이는 곧 자기복제 또는 출산이란 다른 욕구의 충족을 포기하면서까지 그것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으로 여성을 이끈다. 즉 결혼, 출산, 양육   등의 자연적 욕구들은 우선 순위에서 멀어지게 된다.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위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모습

저출생의 해결 방향은 매우 간단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향의 구체적 실현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노동시간이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짧다면, 임신과 출산을 해도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이 없다면,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을 일자리와 직위에 두지 않고 다양한 활동에 두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한다면, 보육·아동돌봄·교육 등이 공적 시스템으로 해소되어 부모가 별도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가족구성의 방식이 결혼 외에도 인정되어 동거와 Pacs가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고 그 환경 속에서 비혼출생을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다면,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거부할 상당한 이유들은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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