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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한 사차원 Jan 18. 2024

질문학개론

우리들은 세상에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되레 아이들에게 배워야겠다.

오늘도 역시나 반에 꼭 한 명은 종 치기 전에 어김없이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 저 질문 있어요!


질문에 답을 해주어도 모든 설명에 덧붙여지는 또 다른 “왜요?” 가 무한 반복으로 나올 때면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럽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 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왜요?’라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에 말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손을 들고 했던 터무니없는 '' 들의 연속을 직접 들으니 '어쩌면 당시의 어른들도 아마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었기 모든 질문들에 대답을 못해주었던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 이미 입력되었다고 생각을 하며 가르치는 문장들 속에서도 방심하다 보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거나, 끊임없이 파고드는 질문 속에 ‘본질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걸 알게 된 시점부터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들은 결국 아이들의 순수한 물음표 속에 들어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아이들이 하는 ‘왜?’라는 단어가 ‘그냥’의 의미로 다가오기보다 ‘순수한 의도’ 속에 들어 있는 ‘왜’들을 곰곰이 살펴본다.


나 또한 '왜'라는 의문이 생기는 날이 올 때면 아이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시선을 물어보곤 한다. 그렇게 함께 찾아내며, 탐구하는 시간 속 서로의 모습에는 살아온 시간과는 상관없이 내가 되려 아이가 되어 있거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있거나, 경계가 무색할 정도로 허물어진 우리를 바라본다.


그날 나는 우리들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일지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우리는 이미 본 것을 지울 수 없고, 자라온 환경, 경험 등 쌓이고 쌓인 시간들에 갇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로 사고가 굳어가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적어도 남은 삶을 낭만 있게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는 아이들이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우리들은 세상에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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