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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헤더 Mar 26. 2024

한 때 친했던 사람으로 남기면 그만

흘러가는 인연에 너무 마음 쓰지 말 것

인생에는 여러 챕터들이 있고, 그 챕터마다 내 곁을 지켜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내 인생의 처음과 끝에 영원히 함께 쭉 같은 관계로 이어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따뜻한 인생으로 완성되어 가겠지만, 사실 그 런 관계는 가족도 힘들다는 것을 우린 모두 너무 잘 아니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뜨겁게 가깝게 지내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할 정도로 친했다 한들, 또 작고 큰 계기들로 멀어지거나 또는 내 인생에서 완전 아웃이 될 때도 있다.


어렸을 땐 그럴 때마다 많이 고통스러워했고, 내가 뭘 잘못했을까 곱씹어보기도 했고,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분석해보기도 했다.  이유가 있어야 납득이 되었고, 납득이 되어야 미워하던, 용서를 하던, 관계를 이어 나가던, 아니면 흘려보내던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나이가 서른 후반이 되고 마흔이 다가오니 이제 인간관계도 제법 내공이 생겼나 보다.  뜨거웠다가도 갑자기 뜨뜻미지근한 관계로 변동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변한 사이가 내 머리로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런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내공 말이다.


예전에는 칼로 무를 베어내듯, 싹둑 자르지 않으면 내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던 관계도 있었고, 아니면 꼭 짚고 넘어가겠다며 내 마음을 장문의 메시지로 설명을 하고 구질구질하게 상대방에게 내가 왜 속이 상했는지 이해시키려 한 적도 있었다.  두 가지 다 해 본 결과, 둘 다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특별하게 내 뒤통수를 친 일이 아니라면, 그냥 한 때 친했던 사람으로 남기면 그만인 관계들이 훨씬 더 많다.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너무 가까웠고, 너무 많은 서로의 속사정을 털어놨고, 너무 아낀 만큼 너무 편해졌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자기도 모르는 실수를 했을 수도 있고.   한 때 한 철 입는 옷들처럼, 그 계절에 맞게 입어야 하는 옷처럼, 그러나 시간이 지나 해지거나 구멍이 나서 유행이 지나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그런 옷들처럼.  그때는 많은 것이 비슷하고 공감되어할 이야기가 많았고, 서로를 만나는 게 힐링이었다면, 어느 날 갑자기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이 바뀌게 되어 더 이상 나의 생각과 말에 큰 공감이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꼭 날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 아니다 이 사람이 진짜 친구다 아니다 이분법 적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정도의 나이가 되었나 보다. 


최근 가까운 지인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관계를 일부러 더 놓지도 붙잡지도 않고 있다.  분명 매일 연락하던 사이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이 어느 날부터 일주일에 한 번도 하기 힘든 사이가 된 것에 서운함은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는 기분, 상대방이 더 이상 나랑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다는 느낌을 알아채리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난 그냥 그런 상태로 두기로 했다.  상대방에게 적당히 '나, 알고 있어. 네가 나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는 것을. 그래 네가 원한다면, 이렇게 거리 두는 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는 정도의 뉘앙스는 풍기면서 나 또한 그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에 대해 안부를 묻고 칭찬을 하고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나에게 안부를 묻지도 않고, 나의 기쁜 일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고, 딱히 나에 대해 전체적으로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냥 나 또한 그 선을 지키기로 했다.  친절하고 여전히 연락은 하되, 딱 그 정도까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는 그 거리만큼만.  자존심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적어도 영문도 모른 채 혼자서 질척거리며 매달리다가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같이 만드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동등하고 공평했던 관계에서 갑을 관계로 나뉘어 나 혼자 기다리고 나 혼자 상상하고 나 혼자 속상해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다.  예의는 지키며 선을 긋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상대방이 거리를 두면, 나도 그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녀의 대체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 인생을 살다 보면 인생의 챕터마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온다.  잠시 내 곁에 나의 상황이나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는 친구가 하나 줄었다 해도 큰 변화 없이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멀어질 사람은 떠나가고, 또 현재의 내 상황에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어 다가올 사람은 또 다가올 테니까.  한때 친했던 사람으로 남겼다가 또 다른 한 때 가까워질 수도 있는 거니까.  인생 흘러가는 대로 자기가 남겨지고 싶은 대로 그렇게 내 인생에 짙은 발자국 남긴 정도로만 생각하고 보내주면 그뿐이다.  또다시 다가올 새로운 인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씁쓸하지만 조금은 냉정하지만 그래도 단단하게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구구절절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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