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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헤더 Feb 12. 2023

영양제 먹듯 챙겨줘야 하는 말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매일 들어야 하는 말

타지에서 친정 없이 결혼 생활 10년을 버텨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꿋꿋하게 아이들을 밝게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단연코 지구 반대 편에 있는 친정 엄마의 존재 덕분이다.


해외 살이 16년 차의 서른여섯 인 나 조차도 엄마의 '말'은 나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가끔은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소리 내어 엉엉 울면서 내 감정을 토해내고 싶을 때, 꼭 그 순간만큼은 어둠에 싸여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심지어 때로는 ‘말'이 아닌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잘 이겨내기도 한다. 나에게 친정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내 입장에서 공감해 주는 존재임을 온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알게 된 것은, 내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외치지 않아도 내 눈빛과 내 목소리 만으로도 내 심리와 상태를 단번에 알아 채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의 부모님이라는 것이다.  ‘내 입장이 되어 한번 생각을 해 봐’라는 말 따위는 필요가 없다.  두 분은 대부분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성숙하고 인자한 엄마의 존재는 자식들에게 평생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다.  큰 아이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 나는 그런 엄마가 되기로 다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을 살다가 누구도 미리 대비하거나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자기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지독하게 고독하고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이 예고장 없이 찾아왔을 때, 도전을 하고 실패를 하고 좌절을 하며 가망이 없다며 자존감이 마구 무너졌을 때, 그냥 ‘엄마’라는 존재를 떠 올리면서 그 순간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매일 전화를 하던, 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전화를 하던, 낮과 밤이 다른 곳에서의 친정 엄마의 밝은 목소리와 엄마가 나에게 전달해 주는 긍정적인 말들은 지금도 내가 살아가는 데에 큰 버팀목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마의 힘이 되는 말 한마디로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생각한 시련들도 별일 아니듯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약한 나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니.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기에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많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의 엄마를 찾았다.  내 안의 모든 사랑을 끌어내어 내 자식들에게 쏟아붓고 번아웃이 찾아오면 나는 내 엄마를 찾아 엄마의 말속에서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나에게  충전시키듯 흡수시켰다.  나도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  


엄마는 나에게 시시콜콜한 모든 감정이나 사건을 공유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나 역시도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엄마와 상의하고 나의 모든 인간관계와 나의 진로계획 등을 알려주는 딸은 아니었다.  평생 커리어우먼으로 살아온 나의 엄마는 늘 바빴고, 나에게 간섭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게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 제한을 알려줬고, 그 안에서는 나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  일일이 꼬치꼬지 묻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엄마는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늘 반복적인 말들을 나에게 해줬다.  매일 잠들기 전,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들이 있었다. 내게 많은 질문을 하진 않았지만, 항상 같은 말을 해줬다. 매일매일. 그 말들은 다음과 같다.


* 우리 딸, 오늘 하루 어땠어?

*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마워.

* 네가 나의 딸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 우리 딸, 너무 사랑한다.

* 나에게서 어떻게 너 같이 예쁜 딸이 나왔을까?

* 엄마는 네가 참 자랑스러워.

* 너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어.


서른여섯 인 지금도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할 때, 여전히 이런 말들을 듣는다.  어렸을 때는 참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스스로 엄마가 되고 난 뒤 생각해 보니, 참으로 감사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에게 내 기분과 상태에 상관없이 매일 이 말을 꾸준히 해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런 말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엄청난 자산이고 행복이었다.  내가 인생의 바닥을 쳤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엄마의 ‘말’ 덕분이었다.  


* 우리 딸, 오늘 하루 어땠어?

* 네가 해외에 살면서 안 아프고 건강하게 있어줘서 항상 고맙다.

* 우리 손자들은 정말 좋을 거야. 너 같은 엄마를 만나서.

* 우리 딸, 너무 사랑한다.

* 내 딸은 어떻게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이렇게 예쁘지?

* 엄마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 너무 잘하고 있어.

* 네가 시작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시작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고 해낼 수 있어.


내가 둘째를 낳고 엉망이 된 내 몸과 얼굴을 보며 자존감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때, 나의 엄마는 나에게 매일 같이 예쁘다는 말을 해줬다.  일이 너무 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들로 아이 둘을 당장 떼어놓고 회사에 갈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유학에 석사에 원하던 직장에서 팀장까지 하다가 결혼이라는 선택 하나로 꿈도 커리어도 다 날려버린 채, 10년째 해외에서 전업 주부로 살고 있는 딸에게 매일같이 해주는 친정 엄마의 말들.  지금은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지만, 내가 언젠가 기필코 나의 꿈을 찾아가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말들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하려 한다.  영양제 먹듯 챙겨줘야 하는 말.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매일 들어야 하는 말.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이들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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