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대교를 건너는 버스의 창에 기대어 한강의 야경을 바라본다.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 도시는 별이 부재하는 밤하늘을 대신해 더욱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다리 조명의 금빛과 푸른빛들이 강물 아래로 줄지어 흘러내리고, 강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수많은 별을 품은 듯하다. 누군가는 이러한 야경을 아름답고 충만한 배경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묘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겉만 화려한 포장지라는 사실을 잘 안다. 포장지가 너무 예쁜 나머지 차마 뜯지 못하고 그대로 전시한 채, 그 안의 내용물을 상상하고 욕망하는 일은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아마도 한강에 몸을 던진 사람들의 기사들을 읽고 난 뒤부터였다. 그들처럼 나도 포장지를 뜯어보았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다시금, 없는 내용물을 예쁘게 포장하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속에 슬그머니 인다. 저 야경이 아름답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충동. 하지만 입술은 차갑게 얼어붙는다. 강 위로 흘러내리는 불빛들 뒤에서 물속 어딘가로 가라앉은 얼굴 없는 얼굴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인 것인지, 들린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버스 창에 기댄 손등에 스치는 감각이 이상하게 낯설다. 손등을 타고 손바닥 안쪽으로 쇠 난간의 냉기가 스며드는 것만 같다. 그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난간을 붙잡고 이 불안한 감촉을 느꼈을까. 손바닥과 쇠 사이에 스며드는 한기는, 마지막까지 세상을 붙들고 있겠다는 의지였을까, 아니면 이미 포기한 몸이 습관적으로 버티고 있던 자취였을까. 나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머문 난간과 안전하게 떨어진 자리에서 그 감각을 마음대로 상상한다. 잠깐 스쳐 지나간 기사의 문장들, 익명의 댓글들, 그리고 알고리즘이 던져 준 짧은 영상들을 짜깁기해 그들의 마지막 몇 분을 임의로 편집한다. 나의 감각이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헛구역질이 온 힘을 다해 배 깊은 데서 목을 타고 치밀어 오른다.
저 불빛들은 미끼처럼 말끝마다 반짝이는 약속을 던진다. 사람들의 욕망은 그 약속에 달려든다, 미끼 뒤에는 잘 보이지 않는 가는 낚싯줄이 있는 줄도 모르는 채로. 이때 줄을 조종하는 것은 기호들이다. 그것들은 허공에 그어 놓은 선들에 불과하지만, 그 선들에는 삶의 길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한강의 야경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기호들이 만든 환상의 거울에 비친 풍경을 보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말. 그 말들은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가슴에 미끼처럼 걸려 있다가, 어느 순간 강물의 깊은 심연으로 몸을 끌어당기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추(錘)가 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미끼 역할을 하는 기호들이 없었다면, 어떤 이들은 끝내 난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는 말들이 사람들의 목을 조르는 장면을 상상할 뿐이다.
오늘날 사회를 지탱하는 온갖 기호들이 종종 나를 대신해 사는 것 같다. 감각도, 생각도, 어느새 그것들에게 전부 위임한 듯한 기분이다.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예리한 감각이 둔해지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실제로 감각하기 위한 통찰력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더듬거리면서라도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기호들에게 삶을 온전히 넘겨주지 않기 위한, 마지막 남은 감각의 연습이다. 그러다 문득 물아래로 사라진 이름들과 나 사이의 아주 가느다란 차이가 떠오른다. 그들과 나는 이곳에 환멸을 느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아직 감각과 생각의 예민함을 그러한 기호들에게 전부 맡기지는 않았다. 반면 그들은 환멸의 순간, 언어의 창조력을 거의 상실해 버렸고, 허무와 절망이 그 자리를 메웠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말의 힘, 기표와 기의의 간극 속에서 기표들을 새롭게 배열할 수 있는 힘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그 간극의 어둠 속으로 추락한 것은 아닐까. 만약 나를 짓누르는 말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했더라면, 나 또한 그들처럼 힘을 되찾지 못하고 같은 방향으로 밀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나 사이의 가느다란 차이는 단지 우연히 비껴간 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시가 잃어버린 웅얼거림이 한강을 따라 흐른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내 마음은 젖어버린다. 해독 불가능한 암호 같은 사연들… 그것들을 느끼는 나의 감각은 사유의 바다로 강물처럼 흘러 들어간다. 감각이 점점 예민해지면서, 기호를 먹고 비대해진 자아는 시나브로 앙상해진다. 그들의 마지막 가쁜 숨을 상상하며 폐 전체를 써서 삶의 허구를 호흡한다. 그 숨은 오래전 강물 속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의 몸이 그려 넣은 이 도시의 균열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을 단지 하나의 교훈이나 통계치, 혹은 불행한 예외로 환원해 버리는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말로 다 옮기기 힘든 서글픔이 몰려온다. 나는 매끈한 서사와 화려한 수사가 이 균열 위를 덧칠하지 않도록 글을 쓴다. 따라서 나의 글은 사회의 찢어진 부분을 봉합하는 실이 아니라, 그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검은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