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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변 Oct 05. 2024

품위 유지의 어려움(上)

부총장 면전에서 "당신이 무슨 부총장이냐"

대학 교수가 지켜야 할 품위란 무엇인가? 해마다 전국에서 적지 않은 교수들이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사유로 징계 받는다. 징계처분을 받은 교원은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訴請審査)를 청구하여 징계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사기일에 출석한 교수님들 상당수가 마지막 진술시 눈물을 보인다는 게 모 변호사님의 전언이다.


그런데 이 ‘품위’가 무엇이고 어디까지 미치는지 현실 세계에서 무자르듯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성희롱, 음주운전 등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품위 손상 유형이 있는가 하면, "그 밖의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일컬어지는 경계가 애매한 영역도 있다[주1].


여기, 교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파면된 한 교수의 사례가 있다[주2]. 가끔 업무에 필요한 판례를 조사하다가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무슨 업무중이었는지도 잠시 잊을 때가 있는데, 이 사례가 그랬다. 고유명사는 모두 가명으로 썼다.



규리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박두리 총장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박두리 ‘전(前)’ 총장이었다. 몇년 전 교육부가 종합감사를 통해 이 대학의 총체적 운영 부실을 확인하고 총장 해임을 요구함에 따라, 박 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김 교수는 1995년 가을날 저녁 같은 대학 이루리 명예교수의 집에 가서, ‘박 전 총장이 학교 돈을 빼돌려 스키장 등에 투자했을 것이다’, ‘마리동 캠퍼스 매각에도 흑막이 있을 것이다’, ‘내가 교수협의회장 하던 당시 학생들이 내 사무실을 기습해서 기물을 파손했었는데, 이걸 박 전 총장이 아니면 누가 시켰겠냐’는 등 열변을 토했다. 이 명예교수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라며 김 교수를 설득했으나 김 교수는 단호했다. 그는 “박 총장이 이제는 다 죽게 되었는데 아주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즈음인 1995. 10. 19. 김 교수는 본인이 속한 행정학과 교수회의에서, 부총장에게 “당신이 무슨 부총장이냐”, “늙으면 곱게 늙어라”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김 교수가 논문심사 과정에서의 특정인 우대 문제 등을 지적하며 ‘교육부에 감사를 요청하겠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부총장이 ‘그건 해교행위’라며 김 교수를 비난하자, 화를 참지 못한 김 교수 입에서 ‘곱게 늙어라’라는 말까지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짐작컨대 문제의 박사과정생 특혜 문제도 김 교수와 박 전 총장 간의 오랜 갈등과 관련있어 보이는데, 기록상 분명치는 않다. 분명한 건 김 교수가 말을 꽤 과격하게 하는 사람이고, 상대가 부총장이든 뭐든 아랑곳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 박 전 총장은 1996. 12. 12. 규리대 이사장으로[주3] 위풍당당하게 컴백했다. 그는 이 대학 설립자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행정학과 교수들은 김 교수에게 등을 돌려, '김 교수가 부총장에게 폭언을 하고 교수들 간의 인화단결을 해쳤으니 조처해달라'고 학교당국에 건의했다. 나중에는 ‘원고와는 더 이상 교육의 마당에서 동료교수로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교육부장관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김 교수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이때 김 교수의 마음에 차오른 분노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996. 12. 17. 박 이사장 앞으로 각종 비위 의혹을 제기하며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냈다. 여기에는 모 학생의 박사과정 입학 특혜(‘곱게 늙어라’ 사건의 발단이 된 그것), 박 이사장 가족들의 ‘수억원대 사채놀이’ 등등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소문이나 학내 대자보 등을 인용한 것이지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 위 우편물에는 “본인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악랄하게 괴롭혀…”, “징계위원회 출석통지를 계속 받게 됨을 평생 한으로 가슴에 깊이 새겼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등 감정적인 원망의 표현도 들어있었다.   


결국 김 교수는 ①이 명예교수네 집에서의 험담, ②행정학과 교수회의에서의 폭언 뿐 아니라 ③박 이사장을 ‘우편물에 의해 협박’한 것까지 징계사유로 인정되어 1997. 6. 13. 파면 처분을 받았다. 징계의결서에는 “사립학교법 제61조제1항”에 의하여 파면을 의결한다고만 기재되고 동항 몇호의 징계사유인지는 기재되지 않았으나, 제3호 “직무 관련 여부에 상관없이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에 해당한다고 후에 고등법원 판결에 명시되었다.



김 교수는 승복할 수 없었다.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주4] 재심청구를 하여 한 단계 가벼운 징계인 ‘해임’으로 변경하는 결정을 받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파면이나 해임이나 교수직을 잃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는 다시 법원에 위 재심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냉담했다. 고등법원 판결은 “그 대화와 우편물 및 위 교수회의 석상에서의 발언 내용, 위 대화나 우편물의 내용이 그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도 않는 것들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원고(김 교수)의 위와 같은 행위들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항상 사표가 될 품성과 자질의 향상에 힘쓰며 학문의 연찬과 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탐구연마하여 국민교육에 전심전력하여야 할 교원으로서의 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로서 사립학교법 제61조제1항제3호 소정의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


나아가 “원고의 근무경력이나 학교교육에 기여한 공로 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징계처분을 해임처분으로 변경한 피고(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이 사건 재심결정이 재량권을 남용하거나 그 범위를 일탈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도 하였다.


징계처분을 받은지 약 1년3개월 만에 내려진 판결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당사자도 약간은 체념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히는 경우는 비교적 드문 편이라고, 상고는 하되 그 점은 참고하시라고 아마 변호사가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로부터 약 1년9개월 뒤, 대법원이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下편에 계속...)


[주1] 「사립학교 교원 징계규칙」 별표에는 성희롱, 성폭력, 음주운전 등 16가지 품위유지의무 위반 유형이 열거돼있는데, 마지막 항목이 "그 밖의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다. 국∙공립대 교수와 달리 사립대 교수는 교육공무원이 아니지만, 「사립학교 교원 징계규칙」 제2조에 따라 사립대 교수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주2] 판결문(서울고등법원 97구46353, 대법원 98두16613)을 기초로 재구성하였다.

[주3] 사립학교를 설치∙경영하는 법인을 ‘학교법인’이라 하고, 학교법인을 대표하며 학교법인 내부의 사무를 총괄하는 사람이 ‘이사장’이다(사립학교법 제2조, 제19조제1항 참조).

[주4] 현행법상 명칭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이다(「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7조제1항, 제9조제1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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