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work anniversary!
알이에프(R.ef)라고 아실런지 모르겠다. 알이에프가 가요톱텐에서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라고 해맑게 노래하던 때만 해도, 우리가 정말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미친 태양이 내리쬐다가 갑자기 미친 폭우가 쏟아붓고,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태양이 작열하며 땅바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날씨가 8월 내내 계속되었다. 역대 최장 열대야라고 했다. 과연 올해도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올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지금부터는 쭉 여름만 이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퇴근길에 나서는데, 저 멀리 익숙한 학사모 곰돌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응? 쟤가 왜 다시 여기 와있지? 습식사우나처럼 뜨겁고 축축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다시 한번 자세히 본바, 지난 2월 졸업식을 앞두고 등장했던 그 대형 곰 조형물이 맞다.
그렇다. 그 사이에 또 졸업식이 다가온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더위에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었지만, 사실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밀린 일기를 쓰듯 그 간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본다.
- 지난 2월 졸업식을 앞두고 법원에 징계효력 정지를 구했던 학생은, 이후에도 수차례 유사한 신청과 불복절차를 거듭했으나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이번 후기 졸업자 명단에도 그 학생은 없을 것이다.
- 우여곡절 많았던 손해배상 소송 한건이 일부인용으로 종결되었다. 하긴 우여곡절 없는 소송이 어디 있나.
- 그밖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느릿느릿 진행중. 개중엔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기록을 보다가 흠칫 놀라는 것들도 있는데, 소송이란 게 이렇게 곧잘 늘어지곤 한다.
- 소송을 하네 마네 골치 썩이던 분쟁 하나는 다행히 상대 업체와 협의가 잘 되었는지, 합의서 초안을 검토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변호사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만 소송은 가능하면 안하고 사는 게 돈 절약, 시간 절약 및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 써놓고 보니 대학교 사내변호사는 소송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문 업무 비중이 더 높다. 법률검토라는 게 원래 답없는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류의 지리멸렬한 결론을 내놓는 일이 되기 십상인데, 그 점에서는 사기업이나 공공기관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가끔은 이 검토의견들이 조직의 의사결정과 실무에 도움될 때가 있을 것이다.
- 대학교엔 정말 다양한 조직과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각종 내규와 위원회도 엄청나게 많다. 학교 법무팀에 있으면, 이들이 얽히고 설켜 별 희한한 이슈들이 만들어지는 걸 목도할 수 있다.
- 그러는 와중에 나는 입사 1주년을 맞이했고, 1년만에 몸무게가 4kg 늘었다. 이럴수가...팀 전체가 간식을 좋아해서 매주 옴팡지게 간식타임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찐다고?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참 더웠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출근해 낯선 자료들을 뒤적거리면서, 그래도 창밖에 펼쳐진 짙은 녹음을 보며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동안 육아기 단축근무로 30분 늦게 출근하며 지낸 것도 만족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이직하면서 뭉텅 깎인 연봉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지만 어쩌랴 싶고, 일하다보면 복장 터지고 열받는 날도 없지 않지만 어느 직장에 다닌들 그런 날이 없겠는가 생각한다.
나 자신, 지난 1년간 수고했고 오는 1년도 잘 부탁해 본다. 더 열심히, 더 즐겁게, 그리고 간식은 좀 줄이기로 하자.
2024.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