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며칠 전에 있었던 일
2월말에 대설주의보가 왠말인가. 게다가 이 학교는 산 속에 있단 말이다.
아침부터 눈 덮인 산과 캠퍼스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긴 한데, 출근길은 대혼란이었다. 미처 제설이 안된 오르막길에 차들이 미끄러지고, 버스는 학교 안으로 못 들어간다며 정문 앞에서 승객들을 내보냈으며, 너도나도 카톡으로 지각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구름낀 하늘과 흰 산의 경계가 흐릿한 것이 언제라도 눈이 더 쏟아질 기세였다. 며칠 뒤 졸업식날엔 외부 인파가 많이 몰려들텐데, 날씨가 계속 이래서야 괜찮으려나 싶었다.
물론 기우에 불과했다. 다음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했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녹아 후둑후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덜 녹은 눈에 덮여 하얀 잔디밭 한가운데는 학사모를 쓴 거대 곰돌이가 들어앉았는데, 기념사진을 미리 찍으러 온 예비졸업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스팟이었다. 학사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곰돌이 앞에서, 도서관 옆 계단에서, 각자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아마 전날의 그 눈이 올 겨울 마지막 눈이었을 것이다.
사실 최근 2주간 출퇴근길에 '학위수여식'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졸업이 임박한 시점에 징계처분을 받은 한 학생이 법원에 징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신청을 했는데 그에 대한 결정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학생은 자신이 절대 징계받을 행위를 한 바 없다고 했고, 부디 졸업식 전에 징계 효력을 정지하여 예정대로 졸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지금 이 며칠에 자신의 인생이 걸려있다고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징계받을 행위를 한 바 없다'는 학생의 말을 믿지 않았으나, '지금 이 며칠에 인생이 걸려있다'는 그의 절박함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졸업식 날짜는 다가오고 법원 결정은 안 나오는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그 학생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나도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기각을 구하는 학교 입장에서 법원 결정이 늦어지는 건 나쁘지 않은 신호였으나, 혹시라도 졸업식 직전에 - 심지어는 졸업식 직후에 - 인용 결정이 나오면 어떡하나 싶어서였다. 만에 하나 법원 결정에 따라 학생을 졸업시켜야 할 경우엔 졸업식 전에 졸업장 찍을 시간이라도 주어져야 학교가 난처하지 않을 것이었다.
다 지나간 일이다. 올 겨울 마지막 눈이 쏟아진 다음날 법원의 기각 결정이 통보되었다. 그 학생은 이번에 졸업하는 무리에 합류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학생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멀리 갈것도 없이...당장 징계의 효력을 다투는 본안소송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졸업식은 내년에도 있고, 내후년에도 있으며, 예전에 계획했던 길과는 다를지언정 여러 길들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여하간 10년이나 20년쯤 지나면 이 일도 지금 느끼는 것만큼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 거대한 사건은 아니게 될 것이다. 의외로 대부분의 큰일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졸업식이 지나고 나면 입학식이 있을 것이고, 학교가 산 속에 있어 봄이 좀 늦게 오긴 하지만 어쨌든 봄이 올 것이다. 날씨가 빨리 따뜻해지면 좋겠다.
2024.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