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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변 Sep 18. 2024

‘세계명작’은 몇살 때부터 읽나요

은하수미디어 세계명작 시리즈

아동용으로 각색된 ‘세계명작’ 책들을 볼 때마다 약간 의문과 저어함이 있었다. 시공간적 배경이 지금/여기와 너무 동떨어져서 아이에게 낯선 것은 차라리 둘째 문제다. 애초에 아동용 콘텐츠로 씌어진 이야기가 아닌 것들이 많아서 위화감이 들곤 한다.


예를 들어  <폭풍의 언덕>을 애들한테 읽히는 게 맞나? 남녀 간의 애증이 휘몰아치는 이 작품이 21세기 동아시아 초딩에게 읽혀질 거라고, 에밀리 브론테는 상상이나 했을까?

<삼국지>는 어떤가? 난세의 영웅들이 창칼로 사람을 썰고 다니며 여차하면 적장의 목을 뎅겅 날리는 이 이야기를 몇살 때 권하는 것이 적당한가?


고민될 땐 유튜브에 답이 있는 법이다. '초3 권장도서'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본 결과, 개인차는 있지만 대략 초3쯤 되면 세계명작을 읽히기 시작하는 모양이고, 전문가 한 분이 '은하수미디어 세계명작'을 추천해준다(영상 링크). 네? 옛날 순정만화풍 삽화와 촌스러운 표지디자인 때문에 펴보지도 않고 걸러왔던 그 책이요?


“...아이들이 만화인 줄 속아요, 표지만 보고. 하지만 만화가 아닙니다. (하하)” - 최지아 선생님

 

곧바로 ‘삼성 초등 세계문학’이나 ‘비룡소 클래식’ 전집부터 들이밀지 말고, 아이 입장에서 심리적 장벽이 낮은 은하수 버전으로 시작해보라는 취지였는데, 듣고보니 설득력이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만화풍 삽화가 들어간 책을 재밌게 읽으며 그림도 따라 그리고 했더랬다. 낯선 서양 이름들이 줄줄이 나와서 헷갈릴 때, 만화캐릭터처럼 표현된 등장인물 삽화가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시험삼아 ‘삼총사’와 ‘오 헨리 단편선’을 우선 사줘보았다.

어른들 취향에는 약간 덜 맞는 디자인의 ‘은하수 세계명작’


어릴 때 여러번 재미나게 읽었고 영화도 재미있게 봤던 ’삼총사‘. 무슨 얘기였나 가물가물해서 펼쳐봤더니, 오랜 시간이 지나 학부모의 눈으로 본 ‘삼총사‘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왕이 생일선물로 준 다이아 목걸이를 내연남에게 선물하는 왕비...


그 목걸이를 가슴에 달고 다른 여자와 춤을 추는 내연남...


왕을 지킨다던 총사들은 약간 불량청소년 느낌으로 ‘결투’ 약속이나 잡고 다니는데, 이들이 “All for one, one for all!"을 외치며 목숨걸고 나선 일은 의외로 바람핀 왕비가 안 들키게 도와주는 것!


...역시 이걸 풀빵에게 읽히는 게 맞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지만, 다시 봐도 흥미로운 활극이긴 하다. 이렇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을 매료시키는 이야기들이 간혹 있다. 아이가 ‘세계명작’을 읽으면서 그런 이야기의 힘을 발견하길 바라는 게 엄마 마음이다. 안전하고 교훈적인 현대 동화책만 보다가, 이렇게 막 총도 쏘고 팜므파탈도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면 의외로 재미있지 않을까?


엄마 마음과 달리 풀빵은 ‘삼총사’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만 재미지게 읽은 뒤 쓸쓸히 집안을 굴러다니는 ’삼총사‘...


다행히 ‘오 헨리 단편선‘은 (첫번째 단편인 ‘마지막 잎새’를 엄마가 직접 읽어주며 꼬드긴 끝에) 재미있게 읽은 모양이다. 원래 호흡이 짧고 위트 있는 이야기여서 비교적 쉽게 읽혔나보다. 뭐, 시간이 지나면 청년들 칼싸움 얘기에도 흥미를 보일거라고 생각한다. 수십권 통째로 사주기보다는 그때그때 적절한 작품을 골라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은하수미디어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명작> 시리즈
- 추천연령: 초3~초5
- 특징: 만화풍 표지와 삽화가 아이들에게 흥미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
- 주의: 작품마다 적절한 연령이 다를 수 있어 보이고, ’폭풍의 언덕‘ 같은 일부 작품은 역시 좀더 큰 뒤에 덜 축약된 버전을 바로 읽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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