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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n 05. 2024

연애에 임하는 자세

#2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평범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평범한 삶보다 나은 삶 정도면 어떨까 했고. 


대체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평범하게 살며 예상한 대로의 삶을 살았다.


어느덧 중년의 시기가 찾아왔고 이혼이라는 복병을 만나 예상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이 평범하지 않거나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순탄치 못한 것은 분명하다. 


지금 시점의 정답 하나, 단순한 삶은 없더라. 

내가 추구하는 목표와 한 곳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다른 여러 가지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혼하고서야 어느 정도 알게 된 사정이다. 여러 방면으로 보살피고 관심을 갖고 조금씩 전진시켜야 삶의 조화를 유지한 채 나아가는 것임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단순히 직장에서 혹은 일터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은 나와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것과 무관하며 다른 이의 삶도 일정 부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때, 잊은 만큼 간극이 벌어지고 봉합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내가 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한 발자국을 먼저 간다고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듯이, 조금 부족해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갈 수 있는 우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부부만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내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내 주변을 다 돌보며 보듬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행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지.


살아온 환경과 습관, 가치관이 다른 이를 만나 이견이 있는 생각을 공유해서 설득시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결국 누군가는 소통 중에 설득당하거나 생각의 손해를 봐야 종결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부부의 삶이란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연애도 마찬가지다.


...


어느 커플이나 마찬가지지만 사귐 중에는 어떤 형태로든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다짐한 바가 있어 화를 거의 내지 않거나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좋은 해석으로 내 마음속을 다스리며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려 했다.


"오빠!"


갑자기 불길한 뉘앙스로 나를 부른다. 그 느낌은 여지없다.


"오빠. 어제 같이 만난 걔 좋아하지?"

"갑자기 무슨?"

"어제 보니까 활짝 웃던데?"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일까 고민했다. 어제 우리가 아는 지인 무리를 만나 브런치 식사를 같이 했었지. 당연히 서로 친하고 꽤 신뢰가 쌓인 무리인데, 그중 한 명을 보고 웃었다는 내 표정이 기억날 리 없었다.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나를 보고 그렇게 웃었던 적이 없었어."


기억나지도 않는 내 표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난 최대한 기억을 짜내 그녀에게 설명했다. 


"아마... 그때 옆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이 웃겨서 웃었던 거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릴."

"웃기지 마. 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과거 연애 중 경험했던 기분 나쁜 기억과 어제의 그 상황이 겹쳐 보였다고, 내 감정까지 그 기억과 동일한 건 아니지 않니? 


라고 말할 수 없다. 


"정말 오해야. 그 상황은..."


나의 설명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아무리 그럴듯한 변명을 해봐도 그녀는 온전히 믿지 않았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녀의 기분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오빠!"

"응?"


또 한 번 스치는 불길한 예감. 


"아까 왜 나한테 카톡으로 이런 단어 썼어? 내가 이제 질렸어?"


문제를 일으킨 카톡 대화를 찾아봤다.


당시 이동 중이었고, 대답을 안 하는 것보단 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간단히 답한 'ㅇㅇ'.

한참을 변명하고 달래서 풀어진 그녀는 나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나에게 ㅇㅇ,ㅋ,ㅎ 이런 건 안보내면 좋겠어!"


모든 이슈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겠지. 내가 둔해서 이해 못 하거나 살아온 과정과 환경 차이로 해석이 다른 순간이 빈번하게 생긴다. 그럴 때면 나는 예전에 키운 강아지 '비홍이'를 생각했다.


비홍이는 자주 나한테 이빨을 드러냈다.  배가 고픈 걸까? 서열이 나보다 위라고 말하는 건가? (실제로 집 안 서열이 위였다.) 자기 영역이니 비키라는 건가?


여러 추측을 했지만 비홍이를 탓하지 않았다. 사람과 개의 문화가 다르고, 나는 너의 보호자니까. 


결국 이런저런 고민 끝에 행복하고 무난한 표정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녀도 비홍이도 둘 다 진심으로 나를 원망하는 건 아닐 테니까. 


집사의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람 대 사람의 기준을 갖고 마음의 이득을 저울질하면 안 돼. 다시 한번 나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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