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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n 05. 2024

표정이 닮아가는 우리

#3

오래전 기억 속의 사랑이 주는 단어는 두근거림과 가슴아픔이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환상이 온몸을 지배하고 헤어질 때 가슴저미는. 하지만 나이와 사귄 여성의 수가 늘어날수록 느껴지는 감정의 파도가 낮아지고 헤어짐의 충격이 덜해갔다. 


물론 일반적인 연애와 결혼, 결별과 이혼은 다른 영역이지만 이성의 만남과 헤어짐의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지. 그래서인지 이혼할 때의 충격은 연인의 헤어짐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무뎌진 감성 안에서 많이 완화된 것 같다.


결혼과 이혼을 겪은 후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는 스스로 놀란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그 사이 늙어버린 나의 감성과 연애패턴을 다시 어리고 젊은 가슴으로 바꿔버렸으니까.


밤새 전화기를 들고 사랑을 속삭이고, 남들과 같이 있어도 둘만의 시공간이 느껴졌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는 나의 태도에 스스로 놀라웠다.


'다시 회춘한듯한 마음이 되는구나.'


회춘이란 단어를 언급하기에 내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겠지만, 늘어가는 흰머리와 짙어지는 주름살에 젊은 날의 기억을 되새김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애에 대한 자신감과 이성에 대한 기대감이 희미해질 무렵 생긴 일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


어느덧,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거의 공유했다. 공유한다는 의미는 어쩔 수 없는 시간-직장생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이 소비했으며, 같이 공감하고, 같이 나눴다는 것이다. 동일한 취미로 여가를 즐기고, 한 커뮤니티 안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관심 있는 대화의 주제가 비슷했다. 


이렇게 수개월을 지내니 우리를 아는 사람이 말했다.


"너네 표정이 닮은 거 같아."


오래된 부부처럼 우리는 표정이 닮아있었다. 그것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끼리 닮아가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같이 울고 웃으며 그렇게 닮아가는 것인가 보다.


"오빠. 오늘 화나는 일 있어?"


어느 날, 그녀의 뜬금없는 말에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리고 쇼윈도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무표정한 얼굴이 화나 보이는 듯했다. 


내가 이런... 얼굴이었나.


나를 닮아가는 그녀의 표정은 이런 모습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웃음을 많이 지어야지. 그녀가 가장 많이 보는 내 표정에 그녀의 표정이 점점 닮아갈 테니. 


행복은 단순하고 가깝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그게 행복 아닐까?


그럼, 

우선 나의 행복을 위해,

쇼윈도에 비친 그녀의 표정이 웃음 가득하게 하기 위해,

나의 표정부터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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