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의심이 많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좀 더 경계심이 많다. 타고난 성향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내 추측으로는 이혼 후 겪어온 경험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20대에 결혼 후 외국에서 살았고, 이혼 후 31살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나와 사귀기 전까지 십여 년을 싱글로 살아오며 이런저런 남자와 연애하고 돌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고 들은 풍월이 그렇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는 남자를 고르는데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상'인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런 기준 선언에 나를 정상인으로 생각해 주는 것에 안도하며 말했다.
"대체로 다 정상이지 않아? 보통은 비정상이 훨씬 소수일 텐데..."
그 얘기에 그녀는 혀를 차며 나의 나이브함을 지적했다.
(여기서 나이브하다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오빠. 그건 오빠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십 년이 넘는 나의 돌싱 카페 경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그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몰랐지만, 돌싱 생활이 2년 차에 들어서니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끊임없이 의심했는데, 그중 제일 강력한 의심은 내 이혼 사유였다. 아마 심각한 유책을 숨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겠지.
나의 이혼 사유는 정말 별 다른 이유보단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합의였는데 그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물론 약간의 고부갈등이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말 성격차이였다. 그녀는 가끔 묻는다.
"오빠. 혹시 여자 때려?"
"오빠! 원래 막 욕하고 그러는데 참는 거야?"
"숨겨놓은 애 없어?"
"혹시 바람피운 적 있어?"
"변태는 아니지?"
끊임없는 질문과 의심. 정말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같았다. 이런 성향은 그녀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감의 표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패한 결혼 생활과 이혼 후 이어지는 연애의 또 다른 좌절이 많은 의심과 걱정을 낳았겠지. 혹은 그녀가 겪어본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러 '정상'인척 하는 남자들의 사실에 질렸는지도 모르고.
사실 스스로를 돌아봐도 내가 정상인지 확신할 수 없다. '정상'의 기준이 누구나 다를 테니.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초혼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랑 하는 것이고, 재혼은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갖지 않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정상인 남자는 상대 여성이 싫어하는 면을 갖고 있지 않은 남자일 확률이 높다.
그녀는 같이 손을 잡고 걷거나 밥을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외모를 갖고 있으며, 전화 목소리가 너무 싫지 않은 남자라면 어느 정도 기준점은 넘었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리고 같이 책을 읽으며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잘난 척이 심하지 않은 평범한 남자를 정상의 남자로 분류하는 듯하다. 다행히 그녀가 보기에 나는 그 기준에 적합한 남자인가 보다.
언뜻 보기엔 매우 낮은 기준의 남자 취향인 것 같지만, 사실 그녀의 손을 잡거나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외모도 싫지 않은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 잘난 척의 척도까지 지극히 주관적인 거 아닐까.
대다수의 남자들은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떤 여자들이 보기엔 그 '정상'의 남자들은 매우 소수이며 '이혼'의 이유가 말끔히 해소되어야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요새도 가끔 말과 행동을 할 때 '정상'인이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보곤 한다. 그런 패턴이 때론 내 판단에 여러 가지 지침을 내려주기도 하더라.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 실수를 하지 말자. 싫어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