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는 두 번째 백수
잡리스가 된 현재의 일상
두 번째 백수가 되었다.
처음은 6개월 급여가 밀리고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잘렸다.
뭐 잘린 이유야 내 입장, 회사 입장 다 다르겠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내 위주이기 때문에
회사가 나빴다고 생각하고 싶다.
좋은 회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훨씬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백수도 경험이라고 두 번째 맞이한 백수는 꽤나 즐겁고 나를 위한 시간들로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어릴 적 막연히 장래희망란에 적었던 것을
이뤄보기 위해 공부도 시작했고,
태어나서 열 손가락으로 세어볼 수 있을 정도의
책을 읽던 내가 도서관을 다니며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지금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물론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실업급여 덕분이다.
잘렸지만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건
내 잘못은 없다는 주장의 신빙성을 더해 줄
증거이기도 하지 않을까?
실업급여는 내가 원래 받던 월급의
절반도 안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능력 좋고 지혜롭기까지 한
아내덕을 보고 있다.
서른 살, 6개월 월급도 밀린 것도 모자라
백수가 되었을 때도 힘든 티 내지 않고 나를 믿어주고 응원한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당시 나는 혹독한 아홉수를 겪었다 생각들 정도로
내 인생에서 한 없이 흑백의 순간들이었다.
6개월 간 급여가 밀리면서도 꾸역꾸역
출근한 직장에서는 대표의 좋지 않은 사생활로 인해 부서진 모니터, 수북이 쌓인 내용증명, 빚 독촉 전화가 울리는 지옥 같던 곳에 멍하니 있다 보면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이나 월급을 못 받았으면서 왜 빠른 선택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철저히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돈이 부족하다며 100만 원, 150만 원 씻을 송금 하며
"다음 주에 결제받을 업체가 있어요 걱정 마요"
"이번에 계약된 곳이 있어요, 곧 해결될 거예요"라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밀린 급여는 다 받지 못했다. 임금체불로 소액체당금의 최대한도 1,000만 원은 지원받았지만
약 700만 원 정도는 3년이 지난 지금도 못 받고 있다. 물론 포기하지 않고 받을 예정이긴 하다.
그렇게 백수가 된 이후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정말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싫었고,
무언가에 도전할 마음도 안 생겼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출근하는 아내의 배웅과 집안일, 퇴근시간에 맞춰 밥솥에 쌀을
올려놓는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이라도 하지 그랬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글쎄 농사를 지어도 썩은 땅에는 씨를 뿌리지 않는 것처럼 그 당시 나는 썩어있었기에 어쩌면 그것이 최선이었다.
대신 이 시간이 나를 변화시킨 부분도 있다.
먼저 더 이상 '사람 좋은 척' 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부당함을 겪고도 참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닌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때 그렇게 무기력의 끝을 경험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겼기에 지금 두 번째 백수를 더욱 알차고,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 보면 세상에는 헛된 시간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