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And The Devil In The Land Of The Sun feat. Joe Farrell
Sabia
앨범 이야기
나는 이 앨범을 광신하듯(a love supreme 하듯) 좋아하여 홀로 좋아하는 것에 그치질 못하고 뭔가를 물어보는 사람마다 권하는데, 예컨대 “오늘 날씨가 참 좋죠?”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조빔의 스톤 플라워를 들어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손톱만큼의 여지만 있어도 이야기를 이 앨범으로 끌고 갈 정도다. 나는 이 앨범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태어나 들은 그 모든 앨범 중 단연 가장 종아할 정도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1982년작 ‘스릴러(Thriller)’라 생각하며, 재즈에선 역시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 혹은 ‘어 러브 슈프림(A Love Supreme)’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이 앨범이다(사실 스릴러나 KOB, 어 러브 슈프림에 필적하는 완성도를 갖췄다 생각하기도 한다).
이 광신은 ‘브라질(Brazil)’이란 곡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 언젠가 부지불식 중 들은 그 곡에 나는 단숨에, 그리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도대체 이 곡은 무엇인가? 이토록 간결한데 이토록 복잡한 곡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이가 이런 곡을 만들었단 말인가? 그 후 대충 삼일 정도는 진짜 브라질만 계속 들었다. 그 후 일주일 정도는 하루에 대여섯 번 정도 들었고, 그 후 한 달 정도는 하루 한 두 번, 그 후 일년 정도는 삼일에 한 번 정도 들었다. 그렇게 들어도 브라질은 감탄하는 곡이었고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들으며 다시 감탄한다.
한 음 한 음 엄선한 신디사이저로 시작한 곡은 어느새 베이스 리듬이 들어오고 퍼커션 액센트가 들어오며 고조된다. 신디사이저는 어느새 리듬 넘치는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또 어느새 들어온 조빔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브라질 찬가를 부른다. 그런데 쭉 이어지리라 예상한 보컬은 단 네 마디만에 퇴장하고 한동안 노래 없는 연주가 이어지는데, 이 연주를 채우는 악기들은 각자 쉼 없이 강약을 바꾸며 리듬인 동시에 멜로디인 소리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페이드아웃처럼 보이는 지점이 지나가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조빔의 목소리가 다시 등장한다. 무심하게 흥얼거리는 조빔의 목소리는 역시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퇴장하고 연주는 곡이 끝나리라 예상한 지점을 훌쩍 지났음에도 이어진다. 그리고 신디사이저에 리버브가 묻는다(이 지점은 언제 들어도 감탄사가 붙는다)! 그렇게 하일라이트를 지나 멜로디를 줄여나가며 페이드아웃을 하는데 이 길이가 또 상당히 길다. 어느새 끝났다. 어느새를 연발하다보니 7분이 넘는 곡이 끝났다.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 정신이 없다.
브라질을 계기로 시작된 관심과 애호는 앨범의 다른 곡들로 번졌다. 그리고 단순히 한 곡만 뛰어난 것이 아닌, 든 곡 모두가 굉장한 앨범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곡이 서로 다른 방향과 가치를 지향하며 나아가는 동시에 각각의 아름다움과 묘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으로 조화하며 앨범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끔 힘을 보탰다. 허투루 쓰인 악기가 단 하나도 없고 단 한 마디, 단 한 노트도 허투루 쓰인 게 없다. 스테레오 이미지와 활용은 완벽하며 프리퀀시 레인지와 레이어링 역시 완벽하다. 심지어 커버도 굉장하다. 전면의 운치도 굉장하거늘 게이트폴드를 펼치면 해설 따위가 아닌 근사한 일러스트가 들어 있다. 다각도적이며 총체적인 분석 결과, 난 결국 이 앨범이 완벽하단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수준과 밀도가 너무나 높아 옛 사람이든 오늘날의 사람이든 젊든 늙든 누구든 아우를 수 있을 앨범이란 결론에 다다랐다. 그 중 한 명이 나일 뿐이다.
그 언젠가 여름날, 연차를 쓰고 집에 있던 중 에어컨을 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 밖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나 이 앨범 엘피를 턴테이블에 걸고 곧바로 브라질에 바늘을 올렸다. 멜로디가 시작된 뒤 2분 후, 창 밖 풍경은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가가 되어 있었다. 가본 적 없는 그 곳의 풍경을 난 경험하고 있었다.
엘피 이야기
가장 좋아하는 앨범인 만큼 가장 좋은 소리로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간 다섯 번 샀다. 엘피는 스트리밍이나 시디와는 달리 에디션마다 소리가 천차만별이다. 스트리밍이나 시디도 케이스마다 소리가 좀 다르긴 하지만 엘피만큼 심하게 바뀌진 않는데, 그것은 엘피가 철저히 아날로그 제조공정(=감)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래커 커팅을 하는 사람이 어느 포인트에 집중할 것인지에 따라, 프레스 컨트롤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깊이로 찍는지에 따라, 바이닐의 재료와 배합비가 어떤지 등 그 많은 개입요소에 따라 소리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같은 앨범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어떤 가치를 우선하며) 만들었는지에 따라 엘피마다 전혀 다른 소리가 난다. 엘피로 좋은 소리 듣기 어려운 이유이자 엘피를 다루는 재미이며 내가 가장 좋은 소리가 든 에디션을 찾겠다며 이 앨범을 다섯 번이나 산 이유이다.
이 앨범의 엘피들에는 특이한 점이 있으니 퍼스트들(여러 나라에서 나왔다)의 가격이 저렴한데 반해 특정 리이슈에 붙은 프리미엄은 놀라운 수준이란 점이다. 예컨대 US 퍼스트의 경우 이 글을 쓰는 2023년 1월 기준 VG+ 컨디션도 40달러 언저리에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도달한 2014년 ORG뮤직 45rpm 에디션의 경우 NM 컨디션 기준 대충 400달러 정도는 써야 한다. 왜 이러냐면, 이 앨범의 위대함을 알아차린 사람이 제법 있는 와중 초반의 음질이 신통치 못하고 특정 에디션의 음질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1970년대 CTI 엘피들의 음질은 다들 훌륭하다곤 말 못할 수준이다. 그 무렵 한참 장사가 잘 되어 품질관리보단 출고수량을 우선해야 했기도 하고, 1970년대 미국의 주류소비자들이 쓰는 오디오 시스템의 해상력이 음반의 품질을 샅샅이 가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 수준에 맞춰 품질관리를 한 것과도 같다. 마치 타이달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방법론들과 같이 시장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시장이 원하는 수준을 제공한 것이며, 그로 인해 1970년대 CTI의 음반들 음질은 큰 기대를 할만한 것이 못 되고, 결국 이 앨범 역시 퍼스트 에디션들의 음질은 신통찮다.
그에 반해 후일 등장한 리이슈들 중 몇은 빼어나고 선명한 소리를 갖췄다. 이는 후일에 와서야 이 앨범을 사는 사람들 중 그저 이 앨범이 듣고 싶어 사는 사람도 있겠다만 이 앨범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소리를 찾는 수요가 있고 그 수요에 몇몇 제작사는 대응했다. ORG뮤직의 엘피는 경우마다 음질이 들쑥날쑥한데 이 앨범은 좋은 쪽으로 들쑥 튀어나왔다. 유명 마스터링 엔지니어 버니 그룬드먼(Bernie Grundman)이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밀어넣을 수 있는 45rpm으로 만들었다. 프레싱은 독일의 명가 팔라스(Schallplattenfabrik Pallas GmbH), 문제는 딱 1,500장만 만들었다는 점. 1,500장이면 오디오파일들의 수요를 통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ORG뮤직의 예측은 안타깝게도 틀렸다. 결국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었고 그건 다른 음질 좋은 에디션들도 마찬가지다. 불만과 수요가 충분히 쌓인 타이밍이니 곧 새로운 고음질 리이슈가 등장하리라 예상한다. 얼마 전 등장한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아더 사이드 오브 애비 로드(The Other Side Of Abbey Road, 이 역시 CTI 앨범인데 오디오파일 리이슈가 나왔다)' 앨범처럼 이 앨범 역시 새로운 고음질 리이슈가 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때까지 좀 더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 기다리기 힘들다면 퍼스트나 2015년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 에디션으로 달래는 편이 적절하겠다.
같이 들어볼만한 앨범들
조빔의 1967년작 '웨이브(Wave)': 조빔의 앨범들 중 실상 더 많은 대중적 인기와 객관적 명성을 가진 앨범은 이쪽이다. 베토벤으로 치면 이쪽이 9번이고 스톤 플라워는 6번 정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히 들어야 할 앨범이다. 이 쪽의 무드도 굉장하다.
스탄 게츠(Stan Getz)와 주앙 질베르투(João Gilberto)의 1964년작 '게츠/질베르투(Getz/Gilberto)': ‘아메리칸 보사노바’의 신호탄들 중 하나이자 말 그대로 저 유명한 앨범이다. 나는 이 앨범이 실상 타이틀에 이름을 못 건 두 사람의 앨범이라 생각하는데, ‘이파네마 소녀(The Girl From Ipanema)’에서 노래를 부른 아스트루드 질베르투(Astrud Gilberto)와 이 앨범의 무드를 만들었으며 온갖 악기를 다 다룬 조빔이 그 둘이다. 이미 들어본 사람도 조빔이란 맥락을 따라 다시 들으면 새롭게 들릴 것이다.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의 1962년작 '흑인 오르페우의 재즈적 영감(Jazz Impressions Of Black Orpheus)': 이 역시 ‘아메리칸 보사노바’의 신호탄이자 말 그대로 저 유명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 든 곡들 다수가 이후 수없이 많은 음악가를 통해 복기되었고 결국 보사노바의 중추적인 곡들이 되었다. 보사노바를 쫓을 때 놓칠 수 없는 단서다.
세르지오 멘데스(Sérgio Mendes)의 1964년작 '더 스윙어 프롬 리오(The Swinger From Rio, 다만 이 타이틀은 1965년부터 쓰였다.)': 이 역시 잘된 앨범이며 미국 내 보사노바 유행에 일조했다. 리오데자네이루의 젊은이들이 모여 기타 치며 노래 부르다 시작된 게 보사노바다보니 그들 중 하나였던 세르지오 멘데스의 앨범엔 역시 그 중 하나였던 조빔의 영향력이 묻어있다. 멘데스와 친했던 조빔은 이 앨범에 들어갈 곡 여럿을 제시했고, 기타를 쳤으며, 무드를 만졌다. 이 앨범까진 후일 드러나는 멘데스의 취향보단 이 무렵에 이미 만개했던 조빔의 취향이 강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