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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Mar 20. 2024

옷과의 화해 (2)

느타리 버섯볶음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왜 꼭 엄마가 입히고 싶은대로 입혀야 했을까.

왜 가끔은 내가 입고 싶은대로 입도록 그냥 놔두지 못했을까.

뭐가 그렇게도 두려웠던 걸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강아지 모양의 책가방을 사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참 예쁘고 귀여웠던 가방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30년 전이었던 그 때는 지금처럼 예쁜 디자인의 키즈 책가방이 많이 나오지 않았던 시기였다. 모두가 벽돌색이나 군청색의 직사각형 책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 와중에 나의 분홍색 강아지 책가방이 얼마나 눈에 띄었을지를 상상해 보라...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의 관점에서는 그 책가방이 예쁘지조차 않았다. 강아지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내내 평범한 책가방이 부러웠지만, 엄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다.


집이 여유있었던 시절에 내가 입는 옷은 엄마의 노력과 미적 감각을 드러내는 어떤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옷을 얼마나 멋지게 코디해서 입는지는 곧 엄마의 존재감이었다.


열두살 때쯤, 동네의 어느 논술학원에 다니게 된 첫날이었다. 엄마는 내 목에 고급진 실크 스카프를 매주었다. 싫다고 했지만, 엄마는 버럭하며 막무가내였다.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내의 학원에서, 열두살 짜리가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모습...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다르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그 스타일이 거북해서 학원에 있는 내내 부글부글 차오르는 거부감을 견디다 돌아왔다.

학원에서는 내가 그 곳에 처음 다녀갔던 날, 선생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 말씀드리고, 앞으로의 교육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의 첫 질문은 다름아닌 이거였다.

"우리 애가 스카프 맨 거 보셨어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몸에 변화가 생기자, 나는 쫄티가 입기 싫어졌다. 당시에는 가슴의 형태가 드러나는 것도 영 불편했고, 사람의 위팔이 몸통과 만나면서 만화책에서처럼 직선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나와 엄마의 관점은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 엄마는... 가슴 컴플렉스가 있었다. 딸인 나의 가슴 사이즈는 엄마에게 선물같은 위로이자 자신감이 되었다. 엄마는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에 쫄티를 싫어했던 나에게 쫄티만 입히기 시작했다.


조끼를 입는 스타일이 싫었지만, 엄마는 마음에 드는 조끼들을 발견하자 나로 하여금 꼭 그 멋진 조끼들을 입도록 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은, 학교 친구들의 조롱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너무 어른스럽거나 오버스러운 스타일은 동년배인 친구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억지로 억지로 입고 가서 놀림을 받는 기분은 정말이지 형언할 수 없이 더러웠다.


"딸을 열심히 키웠으니까... 자기가 원하는대로 입히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 입어주자."

엄마가 원하는대로 입으면서 그게 엄마를 위하는 길이라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엄마 뜻대로 입어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입을 때마다 자꾸 마음에 분노가 생겼다.


그렇지만 사춘기였음에도, 엄마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 즈음에 엄마는 큰 배신을 당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어 울고 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가 눈물 흘리고 있지 않을 때 마저도 엄마가 마음으로는 울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슬픈 엄마가 고집할 때, 그게 뭐가 되었든지 간에, 싫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특히 옷에 대해서)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엄마가 20대 였던 시절에 인물이 좋았던 삼촌이 대학교에 들어가자, 엄마는 빽바지에 빨간 벨트를 삼촌에게 주면서 입으라고 했다.

"누나!!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입어. 싫어!!"

엄마는 막무가내로 고집했다. 결국 삼촌은 엄마가 입으라는대로 입고 학교에 갔다.


한 번은 사촌이 우리 집에 놀러왔던 적이 있었다. 전라남도에 사는 어린 사촌이 인천에 있는 우리 집에 온다는 게 특별한 일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그 사촌에게 옷을 한 벌 사주고 싶어했다. 사촌을 데리고 집 옆에 있던 현대백화점에 가서 엄마가 옷을 골라 사주려고 하자, 사촌은 차분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고모, 이건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엄마는 한편으로는 놀랐고, 한편으로는 괘씸하게 생각했다.

사촌이 예의없이 표현한 것도 아닌데 엄마가 왜 굳이 괘씸하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갸우뚱한 채 지나갔다.


왜 엄마는 옷을 입히는 데 있어서 독재자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자신이 입혀주는 대로 따르지 않는 걸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걸까.


엄마의 심리를 내가 겼었던 몇몇의 단편적인 기억만으로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심리가 생겨나게 된 건 분명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과정이었을 테니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의 마음을 재정립할 수는 있다.


옷이라는 수단으로 나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나의 의사가 인격적으로 존중되었어야 했다. 내가 무엇을 입고 싶은지, 무엇을 들고 싶은지, 무엇을 신고 싶은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소중히 여겨졌어야 했고, 나는 그런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자유로움을 느꼈어야 했다. 비싸고 좋은 것들을 입혀주는 것보다 나의 의사에 귀기울여 줄 때 나는 소중히 여김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

1. 그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는다.

2.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내가 싫으면 싫은 거다.

   타인들의 눈에 예쁘든 안 예쁘든 상관없이, 엄마의 눈에 좋든 안 좋든 상관없이.


=========


< 느타리 버섯볶음 >


들깨를 좋아하는 나는 이 레시피가 마음에 든다.


느타리 버섯을 적당히 찢어서 기름 두른 팬에서 센 불에 볶는다.

버섯에서 물이 나오니 좀 졸여야 한다.

졸이면서 국간장을 조금 넣고 같이 볶아준다.

다진 마늘과 길게 썬 고추를 넣어준다.

물이 거의 다 졸여지면 들깨가루를 한큰술 넣고 약불에 잠시 볶아준 후 불을 끄고 들기름을 좀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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