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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May 05. 2024

내 마음밭에 심은 사소한 천국

오뎅 볶음

며칠 전 화분에 흩뿌려 놓았던 바질 씨앗에서 드디어 싹이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흙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화분에 아주아주아주 작지만 상당히 또렷한 연두색의 점들이 무려 열개나 생겼다. 맨땅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설레임이 몰려왔다.

"어머나... 안녕! 반가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 흙 한 덩어리에다가 며칠 동안 아침마다 물을 주면서 과연 이 씨앗에서 새싹이 나긴 나는 걸까, 씨앗이 너무 오래되서 발아가 안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씨를 심는 과정에 무언가 놓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었을까 등등의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씨앗은 성장의 진도를 나가고 있었던 거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태복음 13장)


그러고 보면, 새들이 와서 깃드는 큰 나무로 자라나면 그 때 가서야 이윽고 천국이 된다고 하지 않았다. 천국은 바로 내 밭에다가 심은 작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다.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내 화분에다가 심은 귀여운 바질 씨앗들도 천국 같을까. 얘네들도 작긴 엄청 작았는데. 그치만 겨자나무처럼 커지지 않을 테니까.. 


바람에 우연히 내 밭으로 날아든 겨자씨가 천국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자기 밭에다가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이 천국 같다고 했다.

이 사람이 자기 밭에다가 지름 1mm 인 작디 작은 겨자씨를 가져다 심었을 때 어떤 마음과 생각이었을까. 

그 작은 씨가 나중에는 나무가 되는 스토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내 화분에 바질 씨를 뿌렸을 때처럼 이런저런 의구심을 한가득 품고 있었을까.


상처 치유를 꾸준히 해나가다 보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진지해진다. '천국' 이라고까지 표현한 이게 도대체 뭘까. 




질문을 마음에 머금고 있다가 문득 어쩌면 행복의 가장 주요한 속성 중 하나는 성장한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듯 우리 내면의 우주 또한 무한히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변화가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을까.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비로소 내가 왜 마음의 상처로 인해 힘들었는지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마음 속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게 힘들었던 이유는 상처 자체가 아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상처로 인해 그 부분에 마음의 흐름이 막혀서 성장해 나갈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성장기 시절에 애정 결핍으로 자라난 엄마의 상처들을 먹고 자라난 나는 사랑의 그릇을 키워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사랑은 인간이 가진 본성이라, 이 부분이 막히면 몸이나 마음에 병이 된다는 걸 몰랐다.


초중고 시절에 맞아가면서 억지로 공부하고 나자, 공부가 너무 싫어서 스스로를 개발 시키는 데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내 마음 속에 빛이 닿지 않을만큼 깊은 어딘가에서는 발전에 대한 욕구가 존재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도무지 노력하기가 싫었다. 발전하고 싶은 욕구와 노력하기 싫은 마음이 줄다리기 하듯 대치하는 데에 나도 모르게 힘을 다 써버린 탓인지 나는 한 거 없이 항상 피곤했다. 


어려서부터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열 권짜리 장편 소설들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학교 갈 때 책가방이 아무리 무거워도 소설책 한 권을 꼭 넣어 가지고 다녔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공부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게 점점 두려워지고 뭔가 잘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을 결국 손에서 놓았다. 이상하게도 성인이 되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놓여도 다시 책을 잡지 못했다.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결국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눌려졌다. 뭔가를 좋아하는 감정 자체가 어딘가 불편한 것 같이 느껴졌다.


제주도에서 국제학교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이들은 학부모들로부터 성장을 강요받으면서 성장의 기쁨을 잃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성장을 향한 기쁨과 욕구는 학부모들의 두려움과 동화되어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우월감으로 차차 대체되어 갔다. 내가 겪은 아픔과 혼란을 아이들이 똑같이 겪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나는 마치 마음의 재활 치료를 하듯 성장의 행복을 다시 느껴가기 시작했다. 

매일 거울 속의 나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해" 라고 말해주면서, 사랑하는 내가 성장해 가는 그 모든 스텝들을 빠뜨리지 않고 기뻐하고 축하해 주려고 한다. 


내가 전보다 남편을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 내 마음에 사랑이 자라고 있음을 축하해 주었다.

어제는 내가 만든 음식이 대체적으로 전보다 조금 더 맛있어 졌다고 느껴져서 기뻤다.

며칠 전에는 도서관에 가서 마음이 가는 소설책을 한 권 빌려왔다. 아직도 소설책을 읽으려고 앉으면 '내가 해야하는 더 중요한 다른 일들이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아직 몇 페이지 못 읽었지만, 나의 진짜 마음을 느끼고 존중하려고 움직여 보는 내가 좋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나에게는 내 마음 밭에 심은 겨자씨 같은 작은 천국인 거다.




< 오뎅 볶음 >


오뎅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끓는 물에 한 번 데친다.


프라이펜에 기름(나는 올리브유를 썼다.)을 아주 조금 두르고, 다진 마늘을 약불에 익힌다.

마늘이 어느 정도 익으면 데친 오뎅을 넣는다.

펜에 진간장을 살짝 끓여서 오뎅과 섞는다. 

국간장도 아주 살짝만 더해준다.

설탕 넣고 조청도 한큰술 넣어준다. (설탕만 넣을 때보다 풍미가 좋은 것 같다.)

마지막에 참깨를 좀 으깨어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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