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할 수 있지 너네...?
언젠가 한 번은 글을 쓰리라 생각했는데, 시범경기 한 경기를 하자마자 예상되었던 문제점이 터지고 있는 것 같아서 적게되는 야구 이야기.
길지는 않았지만 3년 정도 야구판에서 KBO, 구단과 컨택하고 야구 중계를 담당했던 입장에서 써보는 티빙 이야기.
야구 모르는 이들은 관심 하나도 없지만 야빠들에게는 올해 대 사건이 일어났다. 야구가 드디어 유료화가 되었다.
이제는 티빙으로 최소 매월 5,500원을 내야 볼 수 있다. 물론 네이버 멤버십에도 포함하고, 스마트폰 요금제에도 포함되어 있고 한다고 하지만 이건 진짜 티빙이 광을 판 이야기이다.
야구계는 정말 정말 정말 연령대가 높다. MLB는 이미 할아버지만 보는 스포츠라고 하지만 KBO 역시 평균 나이대가 높고 새롭게 야구를 보는 20대가 적은 편이다. 직관에서 많이 잡히는 20대 여성분들은 반대로 드물기 때문에 카메라 감독이 동선을 외워 찍어주는거다.
연령대가 높다는 건 티빙의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이 다른 스포츠 대비 높고, 심지어 이를 이용하는 방법도 잘 모를 것이란 거다. 해외축구 스포티비야 약간 우리나라 것도 아닌데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새벽에 하다 보니 사실 일부를 위한 스포츠에 가까웠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야구를 싫어해도 매일같이 TV로 틀어놓는 아버지로 인해 다들 일상에 어느정도 들어와 있는 스포츠이다. 그런데 그 삶의 방식을 삭제한다?
그리고 20~30대야 네이버 멤버십도 쓰고 1/4 1년 결제도 하고 다른 방법이 많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이 방법을 100%활용해서 야구를 본다? 기대하기 너무 어렵다.
심지어 야구를 보는 사람들의 패턴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6시 반이 되었다고 재깍 야구를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물론 6시 반의 시청률이 가장 높겠지만 그저 네이버를 들어갔다가 아 지금 야구하지!라는 판단에, 네이버를 이용하다가 스코어를 보고 우연히 접속할 이 모든 트래픽이 사라졌다.
네이버는 여전히 문자중계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영상 중계도 되지 않는 스코어를 얼마나 최상단에 올려줄 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티빙으로 직접 앱을 실행하거나 타이핑을 쳐 이동하고 로그인을 하고 영상을 시청한다? 얼마나 그럴 지 더더욱 모르겠다.
그리고 그 엄청난 동접을 티빙이 다 견뎌낼 수 있을까. 아마 파이가 많이 줄겠지. 네이버/카카오/U+/Wavve/Seezen, 거기에 재판매권을 가졌던 아프리카, 트위치까지. 이 많은 회사들이 가졌던 트래픽을 온전히 한 회사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 왜 지금도 국대 경기하면 쿠팡플레이가 터지는건데.
그리고 오늘 난리가 난 점 중 하나는 하이라이트. 진짜 이 세계를 티빙이 버텨낼 수 있을까. 야구는 경기당 최소 10개에서 20개정도의 하이라이트를 제작한다. 그리고 야빠들은 라이브를 보다가도 하이라이트로 주요 장면을 다시보고 또 보고 씹어먹고 구워먹고 한다. 그렇기에 하이라이트 공급시간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 경쟁을 네이버, 카카오, U+, Wavve, Seezen이 몇년 간 박터지게 해왔다. 즉, 이에 대한 노하우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크게 얼마나 영상을 잘 잘라서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 내느냐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영상을 공급하냐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영상을 잘 잘라서 하이라이트를 만드는 건 사실 그동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들 노하우가 쌓여있고, 크게 다를 수 없는 구조이다.
가장 중요한 건 공급 시간이다. 특히 경기 종료 후 전체 하이라이트를 뽑아내야 하는 시간은 전쟁터이다. 이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느냐가 고객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제는 경쟁이 없네? 그리고 노하우도 없네? 그리고 그 시간대가 아마 티빙의 TVN 컨텐츠들이 실제로 돌아가고 업로드 되는 시간대일텐데 서버가 버텨낼까.(물론 이건 투자하면 되겠지만, 돈 더 써라 티빙)
티빙은 딱 1년만이라도 재판매권을 사서 직접 중계를 해봤어야 했다. 물론 그럴 경우 이 2024 중계권 전쟁에 갑자기 들어와 판을 깨고 단독으로 입찰해 가는 쇼크를 줄 수 없었겠지만 야구팬 입장에서는 정말 못할 짓을 저질렀다.
KBO 야구판은 정말 특수한 생태계이다. 왜 가끔 포항, 울산에서 경기를 하는지, 조금이라도 소리를 잘 못 잘라내는 순간 어떠한 고객 VOC를 받게 될 지, LG vs 두산과 두산 vs LG의 차이가 무엇인지, 왜 LG와 두산이 5월 5일 어린이날에 경기를 하고 최근 야구계의 빅 이슈 중 하나가 왜 박기량의 두산 이적인지, 스트라이크존 위에 네모가 왜 사라졌는지 이 모든 걸 다 알까.
부디 잘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아마 쿠팡플레이의 K리그 쿠팡시리즈를 벤치마킹하고 KBO에 제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축구팬들과 달리 야빠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한때 야구판의 틀을 다 깨고 다녔던 U+의 새로운 중계가 결국 고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은 그저 틀어놓고 3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로 여기는 야빠들의 습성에 맞지 않았기 떄문이다.
야구는 적극적으로 즐기는 스포츠가 아닌 그저 함께 하고 틀어놓는 스포츠이다. 과연 티빙이 그 야빠들의 습성을 깰 수 있을까? 티빙으로 인해 야구는 보다 적극성이 필요한, 관여도가 높아진 스포츠가 되었다. 여전히 TV에서는 무료로(IPTV인데 무료라고?) 제공한다고 하지만, 코드커팅이 대세가 되어가는 요즘 TV도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다.
추가적으로 어제 티빙 TV앱으로 틀어보니 틀어지던데, 너네 TV 중계권 없지 않니...? 아마 정규시즌 시작되고 판권 가져가지 못 한 업체나 방송사에서 신고 들어가면 빠지게 될텐데... 크롬캐스트 전송도 빼고 TV앱도 빼면 그때 그거 감당할 수 있겠니..?
사실 유일하게 유료 구독하는 OTT는 티빙인 나에게, 쿠팡을 너무 싫어하는 나에게는 그나마 나은 소식이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티빙이 버텨낼 지 모르겠다. 버티지 못할꺼면 빨리 팔고 버틸 수 있으면 부디 잘하자. 하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일을 잘하던 허구연 총재가, 심지어 야구만 생각하는 허총재가 왜 유료화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나도 업체 바깥 사람이다보니 모르는 속사정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