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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하 Sep 13. 2023

로보토미의 유니크한 세계관, 모바일 시장에서의 실패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은 왜 이렇게 흥미로운가?

Microsoft Bing Image Creator


2018년 4월에 정식 버전을 출시한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Lobotomy Corporation)'은 '프로젝트 문'에서 개발한 한국의 인디 게임입니다. 해당 게임은 SCP 재단, 캐빈 인 더 우즈, 웨어하우스 13 등의 격리 픽션 장르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상할 수 없을 온갖 종류의 괴물들을 격리시키는 로보토미 사의 관리자가 되어,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을 관리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들은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며, 괴물들로부터 에너지를 모아 시설을 확장하고 더 많은 괴물들을 관리하는 것이 주 목표인 게임입니다. 제작진들이 아무리 찾아봐도 미지의 생물에게 당하는 피해자의 시점으로 만들어진 공포 게임만 있을 뿐, 괴물들을 격리한 시설의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킥스타터와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받아 목표 후원 금액 2백만 원을 대폭 초과한 1500만 원, 목표액 대비 754%를 달성하며 열렬한 관심과 지원을 받았습니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은 크게 정보를 아무것도 모르는 괴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그들을 통해 '에너지'라고 불리는 일종의 '전기'를 획득하는 회사입니다. 마치 '포켓몬스터'처럼 점점 더 많은 '환상체'라는 괴물들을 관리하며 도감을 완성하는 게임인 것이죠. '환상체'들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직원들은 속수무책으로 계속 죽어나갑니다. '환상체'의 정보는 게임 내에서 숨겨져 있으며, 직원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 작업 성공을 통해 얻은 포인트로 정보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스탯은 크게 4가지, 용기, 지혜, 절제, 정의로 분류되고 각각 수치가 높아질수록 더 높은 등급의 환상체를 관리하기 쉬워집니다. 해당 스탯은 '환상체'를 관리하기 위한 4개 분류 작업인 본능, 통찰, 애착, 억압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증가합니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거미봉오리 환상체 정보

'1.76 MHz'라는 환상체는 격리실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보이는 괴물입니다. 확대해 보면 잡음이나 누군가의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폭발음이나 총성이 섞인 소리가 들립니다. 이 환상체는 '용기' 등급이 높은 직원일수록 작업 성공률이 낮아지며, 억압 작업의 효과가 좋습니다. 해당 환상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경우, 다른 격리실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1.76 MHz' 환상체는 여러 가지 콘셉트와 스토리가 있지만, 객관적으로는 '용기' 등급이 낮은 직원을 필요로 하고 '억압'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정의' 등급을 상승시키는 괴물입니다. '거미봉오리' 환상체는 '지혜' 등급이 높은 직원이 관리를 위해 입장할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직원을 고치로 만들어버립니다. 또한 '통찰' 작업을 마치면 무조건 그 직원을 고치로 만들어버리고 사망시킵니다. 신기하게도 직원이 고치가 되어 사망할 경우 '에너지'라는 전기 생산량이 증가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환상체는 '지혜'가 높은 직원을 투입시키지 않으면 되고, '통찰' 작업을 시키지 않으면 되는 괴물입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직접 플레이어가 직원들을 격리실에 투입하여 두 눈으로 체득하거나, 꾸준히 직원을 투입하여 획득한 해당 환상체 '경험치' 자원으로 정보를 열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은 매 구간마다 새로운 환상체를 3장 카드 뽑기 시스템을 통하여 선택하고 배정받습니다. 게임 진행에 따라 격리실이 늘어나고, 플레이어는 모든 환상체에 대한 관리 방법을 숙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회차 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환상체들의 난동으로 인하여 게임이 패배하게 되고, 다음 도전부터는 이미 학습한 환상체들을 수월하게 관리하며 최적화된 경영을 진행합니다.

'샤덴프로이데'라는 환상체는 격리실의 작업을 플레이어가 바라보고 있으면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지며, 작업 중일 때 5초 이상 보면 경고 카운트가 줄어들고, 카운트가 0이 되면 탈출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환상체는 '용기' 등급이 낮을수록 작업 효율이 떨어지며, 작업 결과가 나쁜 경우 해당 직원을 죽이고 그 직원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환상체가 직원의 모습일 때, 용기 3등급 이하의 직원은 바로 패닉에 빠지고, 정의 4등급 미만의 직원이 작업을 완료할 경우 바로 탈출합니다. 이러한 높은 등급의 환상체가 탈출할 경우 모든 격리실에 영향을 미치며, 제압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이러한 단계부터는 관리뿐만 아니라 전투 및 제압하는 전략까지 플레이어는 모두 학습해야 합니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샤덴프로이데 격리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은 플레이어에게 오락실의 '코인 러시' 개념처럼 끝없는 도전과 학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게임 내 간단한 퀴즈가 환상체의 디테일한 정보와 멋진 세계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게임의 전체 진행은 50일 동안 이루어지며, 다양한 엔딩이 준비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진 엔딩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에게 동기를 부여합니다. 'Project Moon' 세계관의 단어와 배경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는 단순한 번역보다 한국의 문화와 민감성을 반영한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줄여서 L사라고 부릅니다. 같은 세계관 내의 'Warp Corporation'은 W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당 회사는 '공간이동'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는데, 그들의 공간 이동 열차는 출발 후 정확히 10초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워프 기술의 실체는 실제 회사의 특이점, '현상 복구' 기술을 은폐하기 위한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원본 데이터만 있다면 모든 것을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실제로 기차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는지는 도착하기 전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Time Track'이라 불리는 T사는 W사의 기차의 시간을 동결하거나,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1만 년의 시간을 반복하는 게임 플레이어의 행위를 메타픽션적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세계관에서는 L사가 관리하고 생성하는 '환상체'의 '에너지'를 W사와 T사가 크게 필요로 합니다. 그 결과, L사의 멸망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마련됩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2021년에 Steam에서 출시된 'Library of Ruina'와 2023년 2월에 모바일로 출시된 'Limbus Company'로 연결됩니다

라이브 오브 루이나, 전투

분명히 '프로젝트 문'이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통해 확립한 세계관은 짜릿할 정도로 멋있고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세계관뿐만이 아닌,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환상체의 관리법을 몸으로 체득하며, 점점 더 관리해야 하는 격리실을 늘려나가는 그 특유의 재미성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라이브 오브 루이나'에서는 전혀 다른 전투 시스템을 소개하는 대신 세계관의 깊이를 더하려는 도전을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보다 특정 소수의 팬층을 보유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에서 난해한 전투 시스템을 적응하지 못하여 게임 진행을 포기했습니다. 좋은 세계관인 것은 알지만, 난해한 것을 억지로 이해하면서까지 진행하기에는 눈을 돌리면 다른 좋은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이후 관심이 식었으나, 최근 2023년도에 이르러 '라이브 오브 루이나'의 후속작인 '림버스 컴퍼니'라는 모바일 게임이 출시된 것을 알게 되어 플레이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작의 난해한 전투 시스템을 그대로 승계한 것에 당황했습니다. 모바일 게임 매출 구조 특성상 캐릭터에게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모바일 게임의 저열하며, 불친절하고 답답한 시스템들을 그대로 답습한 듯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PC 플랫폼에서는 인디 게임 특유의 독특한 플레이와 세계관으로 압도했던 게임 IP가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그 매력을 잃어버린 느낌이 강했습니다. 유니크한 세계관만으로는 매출을 크게 일으키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림버스 컴퍼니'에 과금할 거라면 저는 '원피스 트레저 크루즈'나 '드래곤볼 레전즈'에 과금할 것 같습니다. 대중들이 잘 아는 IP에 투자하면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림버스 컴퍼니'의 특정 캐릭터를 얻기 위해서 과금한다 해도, 깊은 팬층을 제외하고는 간신히 뽑은 캐릭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캐릭터 판매를 위해 전투 시스템과 밸런스에 크게 집중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2023년 8월 22일 기준으로 '림버스 컴퍼니'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일간 매출 순위에서 200위 밖으로 밀려나갔습니다. 지난 6월에는 40위에서 100위 사이를 왔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젝트 문'의 김대표는 7월 13일의 업데이트에서 게임 내의 변경사항들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밸런스 문제에 대해서는 빠르게 공지를 통해 안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폴아웃 쉘터 온라인

모바일 게임에서 캐릭터 수집형 게임으로 공격적으로 판매를 하며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판매하는 캐릭터에도 상품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저는 차기작의 게임성 방향 결정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브 오브 루이나'에서의 전투 시스템은 너무 난해하고 학습하기 어려웠으므로, 그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차라리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경영 시스템을 더 극대화하고 세계관에 깊이를 더하여, '베데스다'의 '폴아웃' 세계관을 사용해 Shengqu Games가 2019년에 출시한 '폴아웃 쉘터 온라인' 같은 게임을 제작하여 모바일 시장을 공략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분명 '프로젝트 문'의 세계관은 '베데스다'의 '폴아웃' 세계관과 견줄 만큼의 깊이가 있었습니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경영 시스템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 모바일 시장의 플레이어들을 팬으로 만들고, 그 이후 사이드 프로젝트로 '라이브 오브 루이나'의 난해한 전투 시스템을 차용한 '림버스 컴퍼니' 같은 작품을 출시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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