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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룸 Aug 03. 2024

<퍼펙트 데이즈> 최소한의 행복

영화의 흔적들 01

아이는 늘 좋아하는 것을 단번에 잘도 골라낸다. 크게 망설임 없이 대충 고른 것 같은데 나중에 들어보면 명확한 이유가 있다. 직관적으로 아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나이가 들수록 나는 선택이 어렵다. 관계 속에서는 고려할 것이 많다. 혼자 있을 때는 최종 버튼을 누르기 전에 누군가를 통해 확신을 얻길 원한다. 어쩌다 보니 마음만 최소한의 삶을 지향하는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며, 삶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 내 곁에서 (살아) 남은 것과 함께하는 단순하고 충만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주인공 ‘히라야마’가 거주하는 작은 다다미방은 게스트하우스처럼 간소하고 생활의 냄새가 없다. 지긋한 나이가 되면 고르고 고른 취향의 물건들과 축척된 삶의 역사가 남아있을 법도 한데, 히라야마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게다가 반복되는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하품이 날 정도로 탐이 나는 부분이 없다. 그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다. 정말 고되다고 느낄 정도로 도쿄 내 다양한 화장실 청소 장면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한 가지, 그는 출퇴근길에 카세트테이프가 발매된 시절의 팝을 무작위로 듣는다(영화제목부터가 루리드의 "Perfect day"다). 이 단조롭고 수고로운 하루가 되풀이될 때마다 나는 그가 버려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정말 누리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히라야마의 직장 동료와 그의 여자친구 아야 


처음엔 히라야마가 언어 장애인이라고 오해할 만큼 '말이 필요 없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런 그가 일정한 리듬과 침묵을 깨뜨린 몇 번의 순간이 있다. 화장실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 배회하는 행려 노인, 단골 술집 주인장의 전남편, 왠지 모를 슬픔을 간직한 유흥업소 직원 아야 그리고 가출해 찾아온 조카를 만날 때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히라야마는 평온한 얼굴을 풀고 조금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여동생을 만날 때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데, 이 한 장면만으로도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자신에게 꼭 맞는 것만 남긴 미니멀라이프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히라야마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모으고 있다. 헌책과 카세트테이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로 만든 작은 화분들, 매일 찍는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사진이 그것이다.      


“모으는 사람은 수집하는 물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고 있는 셈이다. (...) 자신과 자신이 모으는 물건, 뭐랄까 그 사이엔 유구하고도 심오한 인연이 있다. 수집에서 나의 고향을 발견하는 것이다. 수집가는 환희를 맛본다. 그래서 물건과 해후하지 못하면, 어딘가 스산해진다. 무언가 모자란 것이다. 구하려는 마음에는 끝이 없다.”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이야기>, 산처럼)     


히라야마는 많은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살기 위해 꼭 맞는 것을 선택하고 소유하고 또 모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현실을 초월해 득도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처지의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인 것이다. 삶의 많은 선택지를 걷어낸 히라야마는 제 힘으로 가 닿을 수 있는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간다. 최소한의 행복을 지향하는 수집가의 삶이다.   



며칠 전까지 열중했던 장난감에서 시선을 돌린 아이는 오늘은 다른 것을 파고 있다.     


 “그것도 좋지만, 요즘은 이게 더 좋아졌어.”     


열중과 싫증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는 어쩌면 히라야마의 경지에 나보다 먼저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를 본 것도 좋았지만, 역시 압도했던 것은 야쿠쇼 코지의 클로즈업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에도 참여한 야쿠쇼 코지의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에 관한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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