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져가지 않는 용기... 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마음을 일깨우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길목이다. 겨울이 오는 마당에 나서니 나무들은 이미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고요하다. 그중에서도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작은 주황빛 감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잎은 모두 떨어지고 주변 나무들은 겨울 채비를 마쳤지만, 그 감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까치밥’이다. 사진 속 그 한 알은 계절의 끝자락을 밝히는 조용한 등불처럼, 겨울 하늘 아래 마지막 존재감을 드러낸다.
까치밥은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오래된 미덕이다. 겨울철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새들을 위해 감을 일부러 남겨두던 풍습. 자연과 더불어 살던 시절의 공존의 지혜이며, 나눔과 배려의 상징이다. 까치밥은 차디찬 겨울, 다른 생명을 위한 따뜻한 배려였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나눔이 빛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사회는 무엇이든 꽉 채우고, 다 가져야 하고,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흐름 속에 있다. 그럼에도 가지 끝의 까치밥은 전혀 다른 철학을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남겨두는 여백, 자연을 배려하는 인심, 경쟁보다 공존을 먼저 생각하던 삶의 태도다. 감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스민다.
“그래, 굳이 다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덜 가지는 용기, 조금 비워두는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에서는 어떤 ‘까치밥’을 남겨둘 수 있을까? 거창할 필요는 없다.
말할 수 있었던 순간에 한 번 더 참아주는 여백, 내 시간을 조금 나누는 배려, 욕심을 반의 반만 줄이는 선택, 가족에게 남기는 작은 친절 한 줌. 이런 사소한 실천들이 결국 나를 가볍게 하고, 주변을 따뜻하게 하며, 공동체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남겨두는 행동’은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숨 쉴 틈을 선물하는 일이다.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아 있음으로 해서 그 누군가가 더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 성공한 삶이다”라고 말했다. 남겨두는 삶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해질녘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순간, 문득 나의 인생 나무에 어떤 ‘까치밥’을 남겨둘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올해도 어느덧 정리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겨울날 감나무 우듬지에 매달린 홍시처럼, 조금은 남겨두며 사는 삶. 까치밥의 인연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과 정을 나누는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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