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작될 때 다들 어떤 모양새인가요? 구멍 난 후드티와 다 끌리는 와이드 청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저는, 단정함이라고 설명하곤 합니다. 옷태를 신경 쓰고, 옷매무새를 몇 번씩 다듬고,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내가 보일 모습을 조심스레 골라냅니다.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도 맞지만, 상대에 대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마음이 반영된 오두방정도 정확한 표현입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과 제가 그 사람과 만나는 것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해를 핑계로 데이트하게 되었습니다. 뻔한 핑계였죠. 전신 거울을 앞에 두고 그날 입을 복장을 한참 고민했습니다. 옷장을 뒤지며 바닥엔 선택하지 못한 옷들이 쌓여갔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죠. 몸매를 드러내는 옷은 추운 겨울에 온 마음을 드러내는 호들갑 같았고, 보온을 생각한 옷은 무성의해 보였습니다. 패션 센스라는 것도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죠. 결국 옷 무더기들 사이에 가장 처음에 입었던 단정한 니트를 골랐습니다. 매번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 고집스러움은 왜일까요? 나는 왜 매번 바로 결정하지 못할까요? 지나온 시간으로 처음 고른 옷이 결국 마지막 옷이 될 것이란 걸 어렴풋이 알고 있을 텐데 말이죠. 참 이상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스스로를 봐야만 만족할 수 있는 걸까요? 그 모습조차 사랑의 확신일까요? 본인만 알 수 있는 노력을 할 때면 자신이 웃기게도 안쓰럽게도 느껴집니다.
청록에 가까운 파란색, 살짝 꺼끌꺼끌한 소재의 니트 소매를 만지작거리면서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잠시 홀로 찬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그가 입구를 올라오며 이런 날 바라보겠죠? 이런 색감이라면 어느 지체 없이 나를 바로 발견하겠죠? 발각되길 기다리며 가만히 서있는 그 시간에는 조금의 설렘과 약간의 긴장이 맴돌았습니다. 긴장감이 손끝으로 번질 때쯤, 계단 위로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
고개를 돌리자 그가 서 있었습니다. 환한 미소로 내게 다가오며, 그는 코트 자락을 슬쩍 열었습니다. 그의 주홍빛 니트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청록빛과 주홍빛. 맞추지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어울리는 색깔. 우연이라는 사실 아래 짜임새가 맞을 때면, 그것을 운명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운명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만나야만 했던 당위가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낭만이 좋습니다. 어떤 기분좋은 착각 아래서, 그날 어깨를 맞부딪치며 겨울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