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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다

by 책피바라


우리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거나 없애야 한다고 배운다.
화를 내면 미성숙해 보일까 두렵고, 질투를 느끼면 내가 못난 사람 같아진다.


[악마와 함께 춤을]은 이런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그러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건 감정을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은 단순한 뇌의 화학 작용이 아니고,
이성과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다.
감정은 때때로 삶에 대한 애착의 표현이며,
우리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감정을 참는 법만 배웠다


나는 ‘분노’를 자주 느꼈다.
불합리한 상황, 무시당하는 순간,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감정이 올라왔다.
그게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가 화를 내면 일이 더 안 풀렸다.
“쟤는 왜 저래?”, “너무 예민하다”, “그냥 넘어가지 왜 저렇게 굴어?”
내가 분노를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더 밀어냈다.

그래서 난 감췄다.
화를 내고 싶어도 꾹 참았고,
‘지금 이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 안에는 말 못 한 감정들이 쌓여갔고,
나는 점점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감정은 잡초가 아니라 지렁이다


[악마와 함께 춤을]은 감정을 뽑아내야 할 ‘잡초’가 아니라,
정원을 비옥하게 만드는 ‘지렁이’에 비유한다.
보기 싫고 불편하지만, 땅을 뒤흔들고 숨을 틔워주는 존재.

감정도 그렇다.
그 감정을 인정하고 잠시 그대로 두는 것.
억지로 해석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그저 머물게 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나를 보호할 수 있다.



성인이 되기 위해 감정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타 토마슨은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말했고,
몽테뉴는 “좋은 철학은 삶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성숙함을 감정 억제로 오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는 건, 더 이상 나로 살고 있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악마와 함께 춤을] 은 그렇게 말한다.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
그것이 곧 나를 지키는 법이다.”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소리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꼭 ‘고쳐야 할 무언가’는 아니다.
슬픔도, 분노도, 질투도…
모두 나를 향해 말하고 있다.

“이건 너한테 중요해.”
“지금 이건 불편해.”
“너는 지금, 살아 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나는 어떤 감정을 '없애야 한다'라고 믿으며 살아왔는가?

2. 그 감정을 감췄을 때, 나는 무엇을 지킬 수 있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3. 감정을 솔직히 인정했던 순간,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4. 지금 내 안에 있는 감정은, 어떤 ‘말’을 걸고 있는가?

5. 내 감정은 정말 나를 방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보호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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