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랑 Nov 03. 2023

슬픈데 왜 빵을 사?

T는 정말 공감능력이 없을까?

T와 F의 논쟁이 재미있는 사람도, 지겨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브런치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블로그에도 T와 F에 관한 글들이 넘쳐나서 피로를 느끼는 사람도 많은 이 시기에 내가 왜 또 T와 F관련 글을 써 한 숟가락 더 얹냐면, 나는 T와 F의 차이를 알게 되어 위안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F에 둘러싸여 있어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우울해지려던 찰나에 mbti를 알게 되고 '아, 내가 비정상이 아니구나'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첫째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 나 어제 너무 슬퍼서 빵을 샀어."

"흐흐 엄만 너 뭐 하는 건지 알아. 엄마는 100% T니까 그런 거 안 물어봐도 돼."

"어, 엄마 이거 어떻게 알아?"

초등학교 4학년들도 요즘 T 냐 F 냐가 화젯거리인가 보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넌 뭐라고 했는데?"

"포빵샀냐고 했어"

"포빵?"

"포켓몬빵... 애들이 나는 확실한 T 래."


웃겨서 한참 웃었다.

빵이 아니라 다른 걸 샀다고 하면 어쩌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 수도 있었을까?

요즘 먹는 것이 최고 관심사인 첫째에게는 뒤에 빵 얘기만 들렸을 수도 있겠다.


"엄마는 뭐라 대답했는데?"

"글쎄, 엄마는 그 말을 처음 봤을 땐(인터넷에서 봤으니까) '슬픈데 왜 빵을 사지? 슬플 때 빵 먹으면 목 메이지 않나' 생각했어."

"그게 뭐야. 엄마 이상해"

어쨌건 너도 T 다. 요 녀석아.


아이는 퇴근하는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묻는다.

"아빠 아빠, 나 어제 너무 슬퍼서 빵을 샀어."

"슬픈데 왜 빵을 사?"(역시 내 남편이다)

"헐!! 왜 엄마랑 같지??"

"큭큭 그게 엄마가 아빠랑 결혼한 이유야~ 생각 회로가 똑같거든!"

"아니 진짜, 슬픈데 왜 빵을 사??"(끝까지 영문을 모르는 남편)






인터넷에서 무감정봇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T 지만, T들이 상대방의 감정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왜 슬픈지'보다 슬픈데 '왜 빵을 샀는지'를 먼저 궁금해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감정에 무관심한 게 아닌데. 상대의 상황과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정보가 더 필요해서 물어보는 거고, 정말 무관심했다면 '그랬구나' 하고 말았을 일이다. 내가 관계를 맺고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왜'를 물어보고 상대방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은 게 먼저 아닐까?


'슬퍼서 빵을 샀다'는 친구에게 T 가 할 수 있는 위로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밥을 챙겨 먹어야지 빵 먹고 기운이 나? 밥 먹으러 갈까?"

음, 이게 아닌가..

"빵 먹으니 좀 기분이 나아졌어?"

"아직 기분 안 좋으면 더 맛있는 빵 먹으러 갈까?"

자꾸 먹는 걸로 결론이 나는 건 애초에 '슬픔'과 '빵'이 한 문장에 있어서다.


T라서 이성적인 척하려는 게 아니라 슬퍼서 빵을 샀다는 그 인과관계가 그냥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너무 슬퍼서 밥을 할 기운이 없어서 빵을 사 먹은 건지, 원래 다이어트하느라 빵을 안 먹고 참는데 다이어트가 안 돼서 슬퍼서 못 참고 빵을 사 먹은 건지...?

슬프면 눈물이 났을 테고 목이 마를 테니 뭔가 음료를 샀을 것 같은데 왜 빵을 샀지? 그 연결고리가 빠진 듯한 관계가 신경 쓰인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부분이.

결국 왜 슬펐는지를 묻는 마음과 왜 빵을 샀는지를 묻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난 너의 상황 전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어. 네 마음이 궁금해.


그리고 F 가 말하는 공감이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라면, T는 슬픔을 공감하면 그 슬픔을 해결해주고 싶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왜 빵을 샀는지가 더 궁금한 것이다. 빵을 사서 그 슬픔이 해결되었는지, 해결되지 않았다면 다른 해결책을 함께 찾아주고 싶은 것이다.


슬픔을 위로받고 싶으면 슬픔을 말해달라. 밑도 끝도 없이 '슬퍼서 빵을 샀어'라고 말해놓고, 공감을 했니 안 했니 따지지 말고. 문맥적으로 충분히 다른 대답이 가능한 말로 상대의 마음을 판단하려 하지 말고.






어쨌건 포빵을 샀냐고 되물었다는 내 딸은... 그냥 빵순이다. 하지만 빵순이든 T 든 F 든 친구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라 믿는다.

 

'나 지금 너무 슬퍼..'라고 말하는데 '포빵샀어?'라고 말할 T는 없다. 혹시나 어떤 빵순이가 '왜 슬퍼.. 포빵 사러 갈래?'라고 한다면, 친구의 슬픔을 포켓몬빵의 달콤함으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자.  






나도 한때 일하면서 ‘감정과다’인 F 상사의 리액션에 '어휴. '힘들겠다. 어떡해..'만 하고 있으면 일이 해결되냐?'며 한숨 쉬고 극혐 했던 T 로서 반성한다.

이건 서로 T 인지 F 인지를 따져서 T 가 옳으니 F 가 옳으니, 누가 공감능력이 없느니 감정과다니 싸울 일이 아니다. 그냥 아 '저렇게 생각하는 성향도 있구나' 알게 되었으니 서로의 진심을 오해하지 않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슬픔을 반으로 나누려 하든, 슬픔을 같이 해결하려 하든 그건 상대를 진짜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 그 고마운 마음을 비난하지 않기를..

작가의 이전글 둘째 콤플렉스의 극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