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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Feb 14. 2024

입사 후 윙을 달기까지 1

훈련원에서는 뭘 배울까? - 안전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객실승무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면 3~4달 정도의 교육기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 기간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매일 8시간의 반복되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잠을 5시간 자기도 힘든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복장, 용모와 태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체력뿐 아니라 정신력까지도 안드로메다로 갈 지경이었다.


항공사 아닌 다른 기업에 먼저 입사했던 친구가 ‘교육원 때가 천국이야. 돈 주고 가르쳐주는 데가 어딨냐? 수료하고 일 시작하면 그때가 그리울걸?’이라고 했지만, 그건 일반회사들 이야기. 항공사 승무원에게 물어보면 100이면 100 교육훈련생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할 것이다.


악명 높은 신입교육이라도 시켜만 주면 하겠다는 사람이 성문밖에 줄을 선다는 것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으로 들리겠지만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루었다고 힘든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튼 훈련원 시절은 내 생애 손에 꼽히는 멘붕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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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전에 출근해서 5시 넘으면 퇴근하지만, 퇴근 후에도 교육의 연장이다. 오늘 배운 것을 제대로 숙지했는지 다음날 모닝 테스트로 확인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익히고 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모닝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일과 후에 재시험을 봐야 하고 그 재시험에서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날 마지막 기회인 삼시를 보고 그것도 통과하지 못하면 입사가 취소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재시험을 치게 되면 재시험뿐 아니라 매일 있는 모닝테스트도 물론 같이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재시험을 봐야 하게 되면 그날 저녁에 공부해야 하는 양은 2배로 늘어나고, 다음날 또 시험을 하나라도 망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재시험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 실무면접을 보고, 체력테스트를 통과해서 또 임원면접을 보고, 신체검사까지 힘들게 통과해서 겨우 승무원이 되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기껏 업무 테스트를 통과 못해서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훈련생은 없다. 그렇기에 잠이 부족해서 당장 누워 자고 싶어도 그날그날 배운 내용들을 바로바로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먼저였다. 내 평생 수능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살면서 언제 그렇게 뭔가를 달달 외워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회사는 2달의 안전교육과, 1달의 서비스교육, 총 3달의 교육기간이 있었다. 대체 그 기간 동안 뭘 그렇게 배우고 외워야 했던 걸까?




1. 안전 교육


2달간의 안전교육에서는 항공보안과 안전에 대해서 배우는데, 엄청 엄숙한 분위기에서 훈련을 했다. 안전 교육을 담당하는 교관들은 처음엔 승무원이 아닌 줄 알았다. 외부에서 안전 교육을 위해 파견온 사람인 줄. 친절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단호한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승무원의 모습과는 달랐다. 훈련 중에는 우리도 훈련복인 점프슈트로 갈아입고 훈련을 받기 때문에 복장은 편했으나, 훈련 분위기는 절대 편하지 않았다. 안전을 몸과 머리에 익히는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매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교육 중에는 먼저 항공기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배웠다. 항공기가 어떻게 뜨는지, 구조와 각 부분 명칭은 무엇인지 이론적인 부분부터 기종별 도어 종류와 작동법, 비상상황시 사용 가능한 도어 구분 및 판별방법 등등..


항공기 문을 여는 법도 평상시에 열고 닫을 때와 비상 탈출시 각각 상황에 맞게 여는 법이 다르다. 또 기종에 따라 바다에 떨어졌을 때는 열면 안 되는 문도 있고, 경우에따라 어떤 경우에는 슬라이드 모드로 어떤 경우에는 슬라이드 해제모드로 문을 열어야 했기에, 각각 상황에 따라 승무원이 신속하게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훈련 중에는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여 제시하고 대응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당시 우리 회사는 항공사 중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전을 위해서는 항공사에서 항공기 종류를 한 가지 혹은 두 가지로 통일해서 들여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비행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날이 오지만 처음부터 그 많은 항공기의 기종별 특이사항을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한 비상상황 대처, 육상/해상 탈출 및 탈출 후 생존 훈련을 하는데, 나는 이 항공기 탈출훈련을 받으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의 승무원 직업의 무게와 first in, last out의 사명감을 처음 느꼈다. 소방관이나 경찰, 군인, 구조대원들처럼 처음부터 그런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니었기에 이 순간에 느꼈던 전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이제 비행 중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책임지고 승객을 안전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구나.


승무원 훈련 보도 사진


구명보트로 이동하는 훈련, 구조영법과 체온유지 등도 배우고 그리고 기내 화재 진압, 난동 승객 진압, 응급 환자 처치 등을 위한 여러 비상장비 보안, 응급장비들의 사용법, 실제로 불도 꺼보고 폭발물도 옮기고 포승줄도 묶어보고 총도 쏴보고 몸을 써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을 배우면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그리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긍지를 느끼며 조금 더 내 삶에 진지해졌던 것 같다.


그 외에도 항공법 규정과 절차에 대해서도 배운다. 법과 안전을 상식적인 준법시민의 수준에서 아는 것과 전공을 하거나 직업적인 필요로 아는 것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업무지식을 전문적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많이들 알고 있는 비상구열 좌석 착석 불가 승객에 대해서, 보통은 '비상구열에는 비상탈출 시 도움을 줄 수 없는 손님은 착석할 수 없다'라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승무원으로서 우리가 배우고 외워야 했던 비상구열 착석 불가 승객 규정은 이러했다.


* 다음 사항을 수행하기에 활동성, 체력, 민첩성이 충분치 않은 승객

 - 비상구나 탈출용 슬라이드 조작 장치에 대한 접근

 - 탈출용 슬라이드 조작 장치를 잡고 밀거나 당기고 돌리거나 조작

 - 밀거나 당기거나 하는 등의 동작을 통한 비상구 개방

 - 날개 위의 창문형 비상구를 들어 올리거나 분리된 부분을 옆자리 혹은 다음 열로 옮기는 등의 동작

 - 날개 위의 창문형 비상구와 비슷한 크기와 무게의 장애물 제거

 - 신속한 비상구로의 접근

 - 장애물 제거 시 균형의 유지

 - 신속한 탈출

 - 탈출용 슬라이드 전개 또는 팽창 후 인정 유지

 - 탈출용 슬라이드로 탈출한 승객이 슬라이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동작

* 15세 미만이거나 동반자의 도움 없이 위에 열거된 하나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불충분한 승객

* 비상구 개방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거나 승무원의 구두지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승객

* 콘택트렌즈나 안경을 제외한 다른 시력 보조장비 없이는 위에 열거한 기능을 하나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승객

* 일반적 보청기를 제외한 다른 청력 보조장비 없이는 승무원의 탈출지시를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승객

* 다른 승객들에게 정보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승객

* 승객의 상태나 책임, 예를 들어 어린이를 돌보기 때문에 상기 열거된 하나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승객


이런 규정들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가면서 우리는 항공업계에도 익숙해졌다. 물론 신입교육 때는 툭치면 줄줄 읊을 정도로 외웠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항목이 있는지 인지만 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도 조사나 빈칸 채우기 그리고 객관식으로는 자신 있다. 이제 느낌 아니까~   




안전 교육은 사실 업무에 필요한 교육인 것을 떠나서 뭔가 지식적인 내용을 배운다는 재미도 있었다. 항공법이나 절차, 규정 등 답이 있는 내용은 잘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승무원은 항공기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교육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승무원이 되지 못하는 것이 맞다. 승무원의 업무 1순위 2순위는 결국 안전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2달간의 안전 교육이 끝나면, 남은 1달 동안은 업무 3순위 4순위에 해당하는 '승객지원'과 '기내서비스'에 관한 교육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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