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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Jun 02. 2024

주말이 지나간다

주말이 정말 스르륵 하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많은 일을 했다. 삼시세끼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다 읽은 책도 팔았고 운동도 했다. 하염없이 자다 깨고도 반복했다.


오후 4시쯤 불안함에 휩싸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때임을 알고 있지만 중요하지 않은 때는 언제란 말인가. 더욱 늑장을 부리며 뒹굴었다. 채워지지 않는 피로와 지루함 속에서.


포식자를 앞에 두고도 태연함을 유지하는 얼룩말처럼 정신이 흩어졌다. 또 쓸 데는 없지만 자주 들고 오는 잡생각에 갇혔다. 나란 사람은 죽는 날에도 잡생각을 하지 않을까.


중요한 일정들이 있음에도 움직이기 싫었다. 그저 쉬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쉬려던 건 아니었는데 눕고 눈을 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굳은 결심과 많은 계획들이 있었지만 오늘 당도한 것은 따뜻한 햇빛과 맑은 하늘 속에서 우울한 마음이었다.


저녁 8시쯤 생활용품을 사러 노브랜드에 갔다. 그래도 4시간 정도는 남았다는 생각과 늘 이런 방심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나를 약하게 만든다는 생각들이 칼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요란한 침묵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 집에 왔다.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샀다. 평소에 먹지도 않던 것들이 유독 생각났다. 허기지지 않았고 충분히 영양을 섭취했음에도 먹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내가 지금 힘든 상태라는 거겠지.


어제 아침 운동을 하며 지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고 하품이 계속 나오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잠시 '쉼'을 선포했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왕국에서.


거창하게 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역시나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갔다. 어딘가로 놀러 가거나 구경할게 많았다면 좋았을까. 모르겠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은 대답이 없다. 언제나 해석하는 사람의 몫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주말이 지나갔다. 그래도 괜찮다, 고 생각해보려 한다. 100년을 산다면 1/36500 정도의 시간은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 결혼하면 이런 휴식도 없을 텐데 열심히 해야 했다는 잡생각이 또 찾아온다. 얼른 묶어두고 잠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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