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영화 리뷰 (스포일러 주의)
수년 전 자극적인 호러물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인 표지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책도, 영화도 모두 눈물을 흘리게 만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롯데시네마에서 재개봉했다.
남은 영화 티켓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 집어든 휴대폰에서 익숙한 제목의 영화가 보였다.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따뜻한 향이 남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페달을 밟았다.
얼마 안 있어 죽는다는 엄청난 사실을, 반에서 가장 따분한 아이가 알아버렸는데.
극 중 야마우치 사쿠라는 여주인공은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밝고 명랑한 인기 소녀다.
반면에 벚꽃의 투병 중 일기를 담은 '공병수첩'을 보게 된 이후 친한 사이 소년으로 부르는 시가 하루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외톨이로 지내는 학생이다.
어느 날 맹장수술을 위해 하루키가 병원 로비를 서성이다 사쿠라의 공병수첩을 집어든다. 반에서 유일하게 투병을 알게 된 친구가 가장 음침한 친구라니, 놀란 티를 내지 않는 사쿠라와 하루키는 사소한 듯 심각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도 너도 하루의 가치는 같아.
매일을 따분하게 지내던 하루키를 사루카는 레스토랑에 같이 데리고 다닌다. 도서위원으로서 책을 정리하는 하루키를 따라 사쿠라는 도서위원이 되기도 하고 함께하는 시간은 점차 늘어난다.
이 영화는 화려한 촬영기법을 쓰지 않았다. 담백하게 사쿠라는 밝은 조명과 피부톤을, 하루키는 어두운 피부톤과 조명 아래에 두고 함께하는 동안 사쿠라의 빛이 하루키에게 닿는다.
그리고 서서히 밝아진다. 삶을 무료하게 보내는 하루키에게 사쿠라는 어린 왕자 책을 선물하고, 더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냐는 하루키의 말에 '나도 너도 하루의 가치는 같아'라는 말을 돌려준다.
껌 줄까?
둘만의 시간이 늘어나자 사쿠라의 절친인 쿄코는 하루키를 질투한다. 둘이 가려던 레스토랑을 하루키와 간다던지, 사쿠라의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태도가 쿄코의 적개심을 더욱 부추긴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던 하루키는 '껌 줄까?'라는 말과 함께 무덤 한 듯 묵직한 말을 던지는 카즈하루와 친분이 쌓인다. 이들의 관계로 플롯은 서막부터 결말까지 이어간다.
함께 놀러 가자는 사쿠라의 꼬임에 따라간 하루키는 신칸센을 타고 가야 하는 지역에서 1박 2일 여행을 끌려가듯 갔지만 생경한 풍경과 경험에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 네가 먹게 해 줄게.
식인 풍습이 있었을 때의 이야기처럼 같은 부위를 먹으면 해당 부위가 낫지 않을까라는 미신을 사쿠라는 믿는 듯 믿지 않으며 내장 꼬치구이나 덮밥을 먹는다.
내심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쿠라를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마음의 하루키가 보듬어주며 그들은 힐튼 호텔에 1박을 묵는다. 그들의 여행을 축하해 주려는 듯 호텔 측의 실수로 방은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게임, 카드 2장을 뽑아 높게 나온 사람이 낮게 나온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거나 어떤 행동을 명령하는 게임을 둘은 함께한다. 겉돌듯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다 둘은 등을 돌린 채 같은 자세로 잠에 든다.
벚꽃은 진 게 아냐, 모두를 놀라게 해 주려고 숨는 거지.
사쿠라는 하루키와 친해지기 전 남자친구가 있었다. 상대는 모범생으로 보이는 학급의 반장이었는데, 집착과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어 헤어졌다. 어느 비 오는 날 사쿠라는 하루키를 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은 스토킹 하는 반장의 눈빛으로 하루키를 훑는다. 사쿠라의 스킨십과 진심에 하루키는 집을 뛰쳐나오고 반장은 하루키에 분노하여 주먹을 날린다.
반장의 역할은 멀어질 뻔한 사쿠라와 하루키를 극적으로 가깝게 해 준다.
어머니, 이러면 안 될 거 알지만 제가 좀 울어도 되겠습니까.
예정된 죽음을 암시하듯 사쿠라는 병원에 입원한다. 피어나는 벚꽃을 사쿠라는 보지 못한다. 말도 없이 찾아온 하루키와 사쿠라는 벚꽃을 꼭 보러 가자는 약속을 잡는다.
이미 봄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즈하루가 극적으로 6월까지 피는 벚꽃 명소를 찾아내 둘은 희망을 품고 벚꽃은 퇴원한다.
사쿠라는 벚꽃을 보지 못한다. 입원 중 읽은 책을 반납하고 하루키를 만나러 가는 중 작중 초반에 뉴스로 잠시 나왔던 묻지 마 살인의 희생자가 된다.
갈등과 행복이 고조된 상태에서 사쿠라의 죽음은 겨우 밝아지던 하루키를 지하로 내리 꽂는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시점, 뭐든 잘 알려주던 하루키에게 사쿠라가 선생님이 되는게 좋다고 했던 말에 하루키는 선생님이 되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를 고민한다.
그러다 쿄코는 카즈하루와 결혼하게 되었고 사쿠라와의 추억이 남은 도서관은 폐쇄된다고 한다. 장서를 정리하던 하루키는 사쿠라의 유언장과 편지를 찾게 되고 가지 않으려던 쿄코의 결혼식을 향한다.
쿄코도 하루키처럼 중학교 때 친구가 없었지만 사쿠라가 먼저 다가와 삶이 밝아졌었다. 그 소중함을 알던 둘은 재회하고, 사쿠라의 편지와 유언장을 읽으며 사쿠라를 제외한 3명은 친구로 지내게 되며 영화는 끝난다
거의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목만 들어도 뭉클하던 영화로 남았었다. 마침 포토티켓도 받아 책갈피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김에 감사한다. 언젠가, 삶이 무료해진다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