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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Mar 04. 2023

내가 결정장애를 극복한 이유

나는 어릴 때부터 결정을 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누군가 나에게 결정권을 주는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단순히 슈퍼에 가서 먹고 싶은 과자를 하나 고르는 것도 결정하려면 30분이 넘게 걸릴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나에게 ‘점심에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도 늘 ‘아무거나’ 또는 ‘너가 먹고싶은거’를 습관적으로 외쳤다. 중요한 결정의 상황에서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고민하곤 했다. 

누군가 나에게 선택을 맡기려하면 ‘아, 나 결정장애야. 이런거 맡기지 말아줘’라고 이야기 하며 회피했다.


어느 순간, 이런 나의 모습이 나 자신에게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step 1. 나는 왜 결정을 못할까.


첫 째,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한다. 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그것에 대한 배제를 의미한다. 나는 늘, A에게도 B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그 결정을 회피하고 힘들어 했다.


둘 째, ‘신중함’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굳이 미루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신중하게 결정하자’라는 이유로 선택을 미루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신중하겠다는 사람을 폄하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셋 째, 사실 나는,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는 ‘답정너’였다.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조금이라도 더 선호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점심메뉴로 제육볶음과 파스타를 고민할 때, 나는 분명 ‘제육볶음’을 더 먹고싶다는 선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정장애’라는 가면 뒤에 숨어 나의 선호를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결론은, 나는 ‘결정을 할 줄 아는 결정장애’ 였다.


결정을 미루고 떠넘기는 ‘결정장애’는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남에게도 부정적이다.


step 2. 결정장애가 남에게 미치는 영향.


결정장애는 때때로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다 괜찮아’ ‘아무거나 해도 좋아’ 라는 말로 상대에게 결정권을 넘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유부단함은 사회에서 답답함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누구에게나 ‘결정’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포기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꽤나 많은 생각과 감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남에게 크고 작은 선택권을 넘겨왔다. 결정장애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배려이자 스트레스를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내가 결정을 해야하는 사회적인 위치나 지위에 있을 때, 결정을 떠넘기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그 자리에 있을 자격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살아가다보면 때로는 강단 있게 선택해야할 중요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갑자기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작고 사소한 것조차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일생일대의 순간에도 결정할 수 있으리라 아무도 믿지 않는다.


step 3. 결정장애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결정장애를 극복한 후, 나는 그제서야 이러한 성격이 얼마나 나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몸소 깨달았다.


첫 째, 결정장애는 나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이다.

성인이 되고 하루하루 느끼지만, 세상은 내가 말하고 찾지 않으면 나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 

내가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국 먼저 말하고 먼저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날 위해서 먼저 일어나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다.


결정장애는 결국 나의 목소리를 숨기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당당하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선호와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더라도 그것에 따라야 한다. 싫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결정을 늦게 한 것을 어찌할 것인가?

결국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의 삶의 순간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닌 남이 선택한 것들로 가득해진다.


한번만, 딱 한번만 눈 딱 감고 결정내리고 큰 목소리로 먼저 이야기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나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살아왔는지.


둘 째, 선택을 두려워하게 된다.

Birth와 Death 사이에는 Choice가 있다라는 명언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선택으로 가득차있다. 아니, 사실 그런 선택들이 모여 결국 삶을 만들어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말은 즉, 그 모든 선택의 순간들은 무서워한다면 우리 삶은 늘 두려움으로 가득차있는 것이다. 

용감하게 나서는 사람들이 기회를 잡고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온다.


우리는 결정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1. 신중함을 잠시 버리고, 시간을 정해 결정해보자. 

2. 작은 일은 (극단적으로) 1분 안에 결정해버려보자. 

3. 그렇게 결정한 일을 먼저 큰 소리로 이야기해보자. 

4. 그렇게 해도 생각보다 별 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맘껏 즐겨보자. 

5. 신중함은 그 이후에 살짝 첨가해주면 된다. (우리는 늘 신중해왔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나 자신을 '결정장애'로 소개하지 말자. 

나는 결정장애를 극복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나를 소개할 때 '강단있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결정의 순간에서도 '내가 정해볼까?'라고 먼저 이야기했다. 

일단 나를 그런 사람으로 정해두고 맞춰가면 된다. 

결정장애로 날 규정해버리면, 극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경험자인 나를 믿고 다들 시도해보길 바란다. 

이렇게 10번만 쉽게 결정하면, 그 이후로는 당신도 '강단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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