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를 썼습니다
팔리는 글은 저자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니다. 독자가 글의 주인이다.
- 《태어난 김에, 책쓰기》(류귀복, p36)
지난 2월, 귀인에게 추천사를 의뢰받았다. 당시는 계획에 없던 펀딩을 진행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선미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때다. 막바지 교정 작업과 신간 홍보를 위한 연재 준비가 겹쳐서 시간이 늘 부족했다. 습관처럼 "24시간이 모자라~!"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내 코가 석자라 제안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뱉어 놓은 말이 있으니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브런치 마을이 예상외로 좁다. "류귀복 작가가 추천사 거절했대"라는 말이 "남아일언중천금인데 약속을 안 지켰대. 이유가 성별 때문이래"라고 와전되어 결국에는 "속보! 류귀복 작가 알고 보니 여자"라고 퍼질 수도 있다. 두고두고 놀림을 당하는 게 두려워서 직진을 결심했다.
추천사 작성 기한을 확보하기 위해 의뢰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편집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교정 전 초고를 받았다. 한글 파일에 있는 글자를 전부 복사해서 즐겨 쓰는 이메일로 보냈다. 그날 밤, 불 꺼진 안방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원고를 살폈다. 판매로 이어지는 추천사를 쓰기 위해서는 임팩트 있는 한 줄이 절실했다. 저자가 보낸 메일 본문에 적힌 "일단, 손수건이나 화장지를 준비하시고, 읽으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ㅋㅋㅋ"라는 부분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핵심 문장을 떠올린 상태에서 정독을 시작했다.
나는 좋은 글을 만나면 밤잠을 포기한다. 일주일에 걸쳐 나누어 읽으려던 원고를 단숨에 다 읽었다. 나아가 수탉이 "꼬끼오!"를 외칠 때 즈음 추천사 작성도 끝냈다. 다음 날 아침, 퀭한 눈으로 아내에게 결재를 올렸고 "잘 썼네. 자기가 정말 좋아서 쓴 게 느껴져"라는 심사평과 함께 단번에 합격을 받았다. 저자로부터 4~5줄의 짧은 추천사를 요청받았지만, 나는 허락 없이 40줄을 썼다. 일탈(?)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온벼리 작가가 쓴 첫 번째 책이다. 추천사 내용은 나중에 다시 쓰더라도 첫 독자로서 애정 어린 감상평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이제 안다. 머리가 기억하는 일은 쉽게 잊히지만, 가슴이 기억하는 일은 끝까지 남는다. 온벼리 작가는 내가 쓴 책을 전부 읽고 서평까지 남겨준 은인이다. 소감을 적어서 인간 류귀복으로 정을 나눈 뒤 작가 류귀복이 되어 후면 추천사를 쓸 계획을 세웠지만, 삶은 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온벼리 작가로부터 "글이 엄청 기네요ㅎㅎ 편집자님이 수정해서 사용하신다고 합니다"라는 회신을 받았다. 뜻하지 않게 담당 편집자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궁금함을 참으면서 기다린 끝에 책이 나왔고, 200퍼센트 만족하는 결과물을 얻었다. 내가 쓴 전문이 도입부에 실렸고, 핵심 문장이 후면을 장식했다.
비로소 다정한 어른이 된
그녀가 건네는 한 권의 위로
손수건을 준비하고 읽으라는 작가의 말을 철석 같이 믿고, "이 책은 약국에서 팔아도 좋을 거 같다. 공감 능력 제로인 내가 건조한 날씨를 인공 눈물 없이 버텼다. 제약 회사들이 긴장해야 할 듯하다"라는 추천사를 계획하며 원고를 살폈다.
소설을 쓰는 작가답게 묘사력이 뛰어나서 금세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런. 데. 원고를 읽는 동안 내 눈가는 건조한 상태를 유지했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책 읽다가 우는 걸 즐기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온몸의 털들이 쭈뼛 서는 황홀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숨어 있던 눈물은 마지막 문장에 찍힌 작은 동그라미를 확인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은 대개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삶을 포기하거나 삶에 감사한다. 작가의 큰 딸 새봄이는 사회가 만든 시선으로 볼 때 부족함이 있다. 아기 천사가 성장해 홀로 버스를 타기까지, 엄마가 흘린 눈물의 양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가족은 119구급차와 응급실 이용이 익숙한 긴 세월을 사랑의 힘으로 견뎠다. 포기에서 순응으로, 원망에서 감사로 이어지는 작가의 삶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세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지난 5년간 기백 권의 에세이를 읽었다. 남은 생에 천 권이 훌쩍 넘는 에세이를 더 접하겠지만, 내 마음속 최고의 작품은 변하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원고를 마주한 나는 완성된 책으로 이 글을 만날 독자들이 부럽다. 더불어 인생 책에 추천사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무한한 영광이다.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며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류귀복,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저자
2024년 봄, 온벼리 작가에게 "작가님은 제가 출판사를 차려서라도 출간을 돕고 싶습니다. 추천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두 해가 흐른 뒤 "처음 추천사를 써 주신다고 했을 때, 정말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 이렇게 원고를 보내게 되는군요"라고 적힌 메일을 받았다. 반가운 소식을 접한 뒤 순도 99.9% 진심으로 추천사를 작성했다.
"성공도 전염이 된다."
희망의 기운을 받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손수건이나 화장지를 챙겨서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읽었으면 좋겠다. 류귀복이 엄지손가락을 걸고 보장하는 책이다. 믿고 따르면 복이 따른다.
PS. 나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쓴다. 엄지손가락은 내게 가족 다음으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