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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08. 2023

백반은 미완성

앵천식당은 청주 한신휴플러스아파트 대각선 골목, 높은 주상복합과 빌딩들 사이에 있는 백반집 노포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 외관과 미닫이문에서 노포의 기운이 느껴진다.


'찌개'는 '찌게'라 쓴 곳에서 먹어야 맛나다는 걸 알게 해준 곳이다.


김치찌개, 청국장찌개, 오징어찌개, 동태찌개 등에 주인 할머님이 직접 만든 푸짐한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 찌개백반이 인기다. 오징어 볶음, 돼지고기볶음, 닭볶음탕 등 안주류도 판매한다.


바쁜 점심시간엔 손님들이 밑반찬이 담긴 쟁반도 들고 가고 식사 후 상도 치운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손주들처럼 행동한다. 주인 할머님도 인심 후하게 밑반찬들을 더 내주며 응대한다. 손주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친할머니처럼….


앵천식당은 함께 백반을 먹었던 친구가 죽은 후 찾지 않았다.


2023년 10월 앵천식당 앞길을 지나다 출입문 '김치찌개' 파란 글씨 옆에 붙은 종이를 본다.


'오늘은'에 밑줄이 그어지고 위에 '죄송합니다. 당분간(병가) 개인사정으로 쉽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앵천식당 -'이라 쓰여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여행 다니며 연세 계신 할머님들이 운영하는 노포에서 가끔 보던 문구이다.


언제 붙은 종인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재영업하시는 경우가 드물었다. 앵천식당 주인 할머님이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바라본다. 친구가 하늘로 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주인 할머님이 차려주시는 백반을 먹고 싶다. 추억 속 친구와 함께.


무릎이 아프셔서 잠시 영업을 하지 않았다. 현재(2024년 11월)는 영업중이다.


바쁜 점심시간을 피해 3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와 함께 찾았다. 식사 겸 술 한잔하려고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공깃밥은 하나만 시킨다.


사기그릇에 따뜻하고 흰 쌀밥이 수북이 담긴다. 밑반찬도 꽃 그림이 그려진 둥그런 쟁반 아래위로 첩첩이 쌓아 내준다. 움푹 패인 검은 냄비에 한소끔 끓여진 김치찌개 반찬이 더해지면 주인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백반 완성된다.


따뜻하고 구수한 쌀밥에 콩나물, 오이무침, 김치, 연근조림, 멸치볶음. 무장아찌, 콩장, 어묵볶음, 가지무침, 도토리묵, 찐고추, 시금치 무침, 열무김치, 버섯, 김 등 소박하지만 정갈한 밑반찬과 시굼한 묵은 김치, 고춧가루, 두부, 버섯, 돼지고기 등을 넣어 끓인 칼칼하고 시원한 김치찌개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할머니 연륜이 담긴 음식 솜씨, 따뜻한 정과 푸짐함이 고스란히 담긴 밥상이다.


이후 오징어찌개와 오징어볶음 반찬이 더해진 백반도 맛봤다.


반주를 곁들여도 좋은 백반이었다. 밑반찬의 구성은 날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따뜻한 하얀 쌀밥을 넉넉하게 담은 고봉밥처럼 주인 할머님 인정은 한결같다.


이곳을 같이 다녔던 친구가 2022년 11월 개기월식날 달의 그림자를 따라 하늘로 갔다. 친구를 추억할 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3년 10월 앵천식당 주인 할머님도 몸이 아프셔서 영업하지 않는다.(2024년 3월 다시 찾으니 영업중이다.)


사라지는 것보다 잊히는 게 슬프다. 기억을 곱씹어 잊지 않을 것이다. 둘다…. 백반은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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