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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Jul 20. 2024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식당은 토렴을 한다?

이문설농탕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에서 직진 후 NH농협은행 종로금융센터 옆 비좁은 골목을 끼고 우회전하여 조금 걸어가면 보인다.


영업시간은 월~토요일 08:00~21:00이며 일요일은 08:00~20:00이다. 재료 소진시 조기 마감될 수 있고, 브레이크타임과 라스트오더시간이 있으니 업체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식사류인 설농탕(1만4천원, 특 1만7천원), 머리탕(1만6천원, 특 1만9천원), 도가니탕(1만7천원)과 안주류인 수육, 도가니안주(각 4만4천원), 소머리안주, 혀밑(각 4만6천원), 마나(1만6천원)등을 판매한다.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문설농탕(里門雪濃湯)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설렁탕 전문점으로, 고종 치세인 1902년(1904년 또는 을사조약 이후인 1907년에 개업했다는 일설도 있다.)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 개업하여 122년째 이어지는,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다.


개업 당시 이름은 "이문식당(里門食堂)"이었고 후에 "이문설농탕(里門雪濃湯)"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며 긴 역사에 걸맞게 주인과 가게의 위치도 몇 차례 바뀌었다. 이문설농탕을 처음 개업한 사람은 홍씨(이름 미상)로, 1902년부터 5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다. 당시 가게의 위치는 피맛골 이문고개 근처였는데 여기서 가게의 상호명이 유래했다. 그 다음에는 양씨(이름 미상)가 가게를 넘겨 받았는데, 이때 공평동으로 가게를 이전했다.


1960년, 양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유원석 여사에게 가게를 넘겼다. 2002년 유원석 여사가 작고하자 그 아들인 전성근 대표가 아내 전혜령 여사와 함께 뒤를 이어 이문설농탕을 운영하게 되었다.


도심재개발사업(도시환경 정비사업)〉에 따라 2011년 기존에 쓰이던 공평동 100년 넘은 한옥 건물을 떠나 견지동의 현대식 조그만 가게로 이전했다.”


이문설농탕은 건국 후 서울시 음식점 허가 1호이며,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과 2013년 서울미래유산,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빕 구르망,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도 선정되었다.


점심시간을 지난 오후 2시 20분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문설농탕 앞에 도착한다. 2017년 첫 방문하여 설농탕 보통을 맛본 적도 있고, 인근에 몇 번 간 식당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았다.


빨간 벽돌벽 위 허름한 간판에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먼저 띈다. 파란색으로 ‘이문(里門)’이라 쓴 한자와 빨간색으로 ‘설농탕’이란 쓴 한글이다. 출입문 위와 우측으로 검은색으로 ‘이문(里門)’이라 쓴 한자와 빨간색으로 ‘설농탕’이란 쓴 한글 상호가 적힌 나무 간판도 달려 있다. 빛바램이 덜하다. 공평동 한옥 시절에 쓰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식당 외관에선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식당이란 명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출입문에 붙은 서울미래유산, 미쉐린가이드, 블루리본서베이, 백년가게 등 엠블럼 등이 가게의 역사와 전통의 맛에 대한 평가를 해주고 있다. 모두 현자리 이전 후의 명성이다.


식당 외관을 살피고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14시 23분이다. 브레이크타임이 15:00~16:30분이고 마지막 주문 시간이 14:30분이다. 어중된 시간이라 손님이 많지 않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미리 정하고 온 막걸리와 특설농탕을 주문한다. 식당 내부를 둘러보기도 전에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차려진다. 3분 걸려 나왔다. 중국집 짜장면보다 빨리 나왔다. 속사정을 모르는 외국인과 우리나라 젊은이에겐 패스트푸드로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하지만 미쉐린가이드의 설명처럼 설렁탕은 “큰 무쇠솥 안에서 사골을 17시간 고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남은 뽀얗고 맑은 국물의 맛"으로 오랜 시간 끓여야 제맛이 우러나는 우리나라 대표적 슬로푸드이다.


밑받침 위에 검은 뚝배기에 담은 특설농탕을 얹고 배추김치, 깍두기, 고기를 찍어 먹는 간장양념 등 밑반찬과 송송 썬 대파를 내준다. 막걸리는 장수막걸리다. 서울 향토 음식인 설렁탕에 서울 막걸리다. 하얀 그릇에 따른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켠다. 시원하다. 무더위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식당을 훑어본다.


이문설농탕을 소개한 기사와 사진들이 보인다. 공평동 한옥 시절의 사진이 눈에 남는다. 눈은 벽에 걸린 원산지 표시판으로 향한다. 양지는 호주산과 국내산 한우를 섞어 쓰고 도가니는 호주산을 사용한다. 머리는 국내산 한우, 사골과 마나는 국내산이다. 김치와 쌀도 국내산을 쓴다. 설렁탕을 만드는 식재료 중 일부는 외국산을 사용함을 알게 해준다. 국내산 한우와 국내산이라 따로 쓴 의미도 잠시 생각을 해본다. 메뉴판도 살펴본다. 크게 식사류와 안주류로 나뉜다. 한글로 쓴 음식명 옆에 일본어만 쓰여있는 것으론 봐선 외국 손님은 일본인이 많은 듯 보인다.


이문설농탕은 솥에 소머리, 도가니, 사골 등을 넣고 오랜 시간 푹 우려낸다. 고명으로는 양지와 소머리고기, 마나(소의 비장), 우설 등을 얹는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비워진 하얀 그릇에 막걸리를 따라 반만 목을 축이고 특설농탕을 바라본다. 눈처럼 희고 국물이 진하다고 해서 설농탕(雪濃湯)이라고 한다. 상호와 메뉴판에도 설농탕이라 썼다. 상호처럼 눈처럼 희거나 일반 식당의 설렁탕보단 국물이 뽀얗지 않다. 검은 뚝배기에 탁한 쌀뜨물 같은 국물이 남실거린다. 국물 위에선 갈색빛 소고기와 다크초콜릿 빛을 띠는 반달 모양의 마나(소의 비장)가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국물보다 하얀 밥알과 국수사리도 살며시 보인다. 썬 대파를 집게로 집어 넣는다. 푸름이 더해진다.


반 남은 막걸리를 마시고 숟가락을 집어 들어 국물만 살며시 떠먹는다. 싱겁고 담박하다. 몇 술 더 국물만 먹는다. 끈적거림 없이 말끔하다. 식재료의 기운이 오롯이 우러난 꾸밈없는 국물이다. 구수함이 은은하게 남는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다시 맛본다. 소금이 섞이며 지복점(욕망이 충족된 상태를 나타낸다.)을 끌어냈다. 국물이 조화를 이루며 풍미와 고소함이 깊어진다.


국수사리를 건져 먹는다. 보드랍다. 이문설농탕도 1970년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설렁탕에 밥 대신 국수를 넣어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설렁탕에 넣거나 별도로 당연히 주는 것처럼 된 국수사리는 그 당시의 흔적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숟가락을 뚝배기에 깊숙이 넣어 건더기와 국물을 함께 떠 입에 넣는다. 양지, 우설, 머리 고기, 마나 등 소의 다양한 부위가 다른 식감과 맛으로 어금니와 혀를 놀린다. 건더기의 양도 넉넉하다. 따스한 온도로 맞춰진 토렴 된 밥알은 국물과 함께 부드럽게 넘어간다. 숟가락질은 반복되고 속은 편하고 든든해진다.


설농탕의 고명으로 사용한 머리 고기, 양지, 우설, 마나 등은 소의 허드레 부위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양념간장에 찍어 고루 먹는다. 다른 부위는 익숙한 맛과 식감이지만 마나는 처음 맛본다. 마나는 비장(脾臟)을 뜻하는 우리말로 만하라고도 한다. 마나를 국물에 적셔 소금 몇 알을 뿌려 먹는다. 겉은 졸깃하고 진갈색 속은 촉촉하고 물컹하게 씹힌다. 작은 구멍 사이로 스며든 구수하고 고소한 육수가 특유의 피 맛과 강한 풍미를 가려주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부위다. 이 맛에 인이 박인 단골분들을 위해 이문설농탕에서는 안주류로 마나를 삶아 국물을 낸 뒤 수육으로 따로 팔고 있다.


설렁탕에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 먹다가 얼마 남지 않은 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풀고 썬 대파도 추가한다. 국물이 빨갛게 변하며 새곰달곰한 맛이 더해지고 대파는 식감을 보탠다. 뚝배기를 밑받침에 비스듬히 걸치고 남은 밥과 건더기를 비우고 남은 국물을 훌훌 마신다. 개운하다. 빨간 국물은 사라지고 검은 바닥만이 남는다. 검은 바닥 색과는 반대로 속은 환하게 풀린다.


설렁탕은 소의 사골과 기타 부산물로 끓이는 것이 기본이다. 언론인  홍승면 씨는 수필 “백미백상에서 "나는 살코기만이 들어 있는 얼치기 설렁탕은 질색이다. 설렁탕의 생명은 국물이지만, 건더기는 연골이나 섯밑이나 또는 만하, 콩팥 따위의 내장이라야 제격이다. 설렁탕은 결코 점잔을 빼는 음식이 아니다. 고기라면 쇠머리 편육 정도가 고작이고, 결코 비싼 살코기를 주로 쓰는 음식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문설농탕은 고 홍승면 씨가 말한 설렁탕의 원형을 잘 간직한 곳이다. 100년 넘는 식당의 역사처럼 주인과 허가처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좋은 식재료와 오래 끓이는 정성, 특별한 맛이 아닌 가장 기본의 맛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따스한 설농탕 한 그릇을 먹으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 막걸리 한잔을 설렁설렁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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