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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Sep 30. 2024

잊히지 않는 전어의 추억

29년차 식품 MD 출신인 김진영씨는 브런치 '전어의 가을은 아직이다.'란 글에서 "9월이면 육지는 가을로 접어든다. 바다는 10월이 돼야 가을 시작이다. 게다가 전어는 여름철 산란이다. 산란 전후의 생선은 가장 맛없다. 양식은 상관 없다. 자연산 기준이다. 여름을 보내며 전어는 알 낳는 데 사용한 에너지를 채운다. 그리고 가을로 들어서면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살을 찌운다." 라고 쓰며 "가을도 초가을과 늦가을이 다르듯 전어가 제대로 맛이 드는 시기는 늦가을부터다." 라고 했다.


아직 이르지만 추억속 전어의 맛을 끄집어낸다.

사진출처:김진영 페이스북

선진수산은 보성 율포항 회천수산물위판장 18번 중매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철마다 잡히는 수산물을 맛볼 수 있다. 둥그런 수조를 활기차게 돌고 있는 전어를 산다.


전어 여섯 마리 만 원에 초장까지 준다. 득량, 율포 쪽 전어는 양식하지 않은 자연산 전어라고 한다. 인근소주 한 병과 얼음을 사 방파제 의자로 향한다.

 

두툼하게 썬 전어를 씹는다. 사근사근 씹히는 식감과 기름진 고소함에 입안이 흐뭇해진다. 가을 바다가 키워낸 농축된 맛이 입속을 지나 내장까지 헤엄친다.

 

가을 바다를 보고 소주 한잔 걸친다. 가을 바다를 씹고 소주 한잔 더 걸친다. 씹을수록 풍미가 더해진 제철 음식의 진하고 구수한 맛에 바다 풍경은 덤이다.

 

한점, 한잔에 나그네는 시나브로 가을 바다가 된다.


보성 안성식당은 수더분한 주인 할머님이 운영하는 보성역 앞 허름한 대폿집 겸 식당이다. 순천역행 마지막 기차를 기다린다는 핑계 삼아 소주 한잔 먹으러 들어간다.

 

군청에서 퇴직하신 지 얼마 안 되신 어르신과 합석하여 서로 시킨 안주로 소주 한잔 마시며 얘기 나눈다. 전어가 제철이어서 좋고 같이 하는 사람이 있어 더 좋고 허름하지만, 정이 있어 더더욱 좋은 전어구이로 기억된다.

 

주인, 상호, 업종이 바뀔 수도 있고 아예 영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맛, 분위기, 추억이 오래 남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제철의 기름지고 고소한 전어구이 냄새와 맛을 기억하듯….


전어 2마리와 꼴뚜기, 소주 한병을 주문한다. 식탁 위쪽은 군청 퇴직하신 어르신의 전어구이고 아래쪽은 내 몫이다. 칼집 내어 구운 고소한 전어구이에 살짝 데친 보들보들한 꼴뚜기, 기름장, 초장을 곁들여 소주 한잔 걸친다.


어르신과 얘기를 나누며 몇 잔 술이 돌자 낯선 사람에 대한 마음도 안주의 경계도 무너진다.

전어구이 살점을 발겨 맛본다. 제철 맞은 전어살이 탄탄하다. 지방질이 몸 전체에 골고루 퍼져 고소함이 절정이다. 칼집 사이로 스며든 소금은 전어 영혼까지도 맛으로 끄집어낸다. 제철, 분위기, 같이 한 사람이 있어 더욱 맛깔난 전어구이다.

 

철 지난 꼴뚜기는 맛보다는 쓴 소주 털어놓고 어금니로 꼭꼭 씹으며 입속을 달래는 용도로 제격이다.

 

시나브로 마지막 기차 시간이 다가온다. 주인 할머니도, 퇴직 군청 어르신도, 나그네도 각자 추억을 간직하며 제 갈 길로 걸음을 옮긴다. 소주 한잔 입에 털고….


영흥식당은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뒤에 있었다. 1986년에 개업하여 2018년 7월 31일 문을 닫았다. 광주 문인, 예술가, 연세 계신 어르신들이 연탄불에 구운 전어구이에 술 한잔하시는 사랑방이자 대폿집이었다.

 

식당 30주년 기념으로 단골손님이 그린 벽화, 옆자리 어르신들의 술자리와 탁자 밑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광주 영흥식당(사진 좌측)/식당 30주년 기념 벽화(사진 중앙)/옆자리 어르신들 술자리(사진 우

광주 여행하며 세 차례 이상 영흥식당을 찾았다. 머리 고기와 황실이 튀김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무등산 막걸리와 연탄불에 구운 전어구이는 늘 먹었다. 토박이말을 쓰시는 손님들을 보며 따라 한 나만의 룰이 되었다.


전어구이를 주문하면 여사장님이 무등산 막걸리와 시래깃국에 철마다 바뀌는 찬을 푸짐하게 차려줬다. 막걸리와 먹으면 안주고 밥과 먹으면 밑반찬이  먹거리였다. 기꺼운 찬에 무등산 두어 잔을 비웠다.

 

그사이 남 사장님은 식당 출입문 옆 연탄불에 굵은소금을 뿌린 전어를 구웠다. 연탄불에 구운 전어는 그릴에 한 번 더 익혀 내줬다. 연탄불 향과 고소한 바다 내음이 코를 후비고 들어왔다. 무등산을 불렀다. 한잔 쭉 들이켰다. 전어를 손에 들고 씹어 먹었다. 억새지 않은 뼈와 보드라운 살점이 어금니와 혀를 놀렸다. 또 한잔 마셨다. 바다는 자꾸 산을 불렀다.

 

손광은 시인은 영흥식당을 '영흥 주점 대학'이라 부르며 시를 썼다. "술은 취하지 않는구나 다만 몸이 흔들릴 뿐... 쓴웃음 섞어 한숨을 마실뿐. 향기로운 막걸리 술을 마신다."

 

어르신들의 세상 사는 소리를 들으며 연탄 전어구이에 술 한잔. 시나브로 나그네는 영흥식당 손님이 아닌 '영흥 주점 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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