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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22. 2024

이유 있는 꿀조합, 짜장면과 막걸리

영천 광명식당

광명식당은 경북 영천 블루캐슬모텔 건너 대로변에 있는 중국집이다. 2019년 영천 여행 때 처음 찾았다. 중년 남 사장님은 서빙 및 손님 응대하시고, 주방은 연세 드신 시아버지와 며느님 두 분이 계셨다.


시아버지 청년 시절부터 개업해 50  영업 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로 1 사장님은 은퇴하시고 중년의 아들 부부가 대를 이어 영업중이다.


신선한 채소와 주문 후 뽑은 생면을 사용한다. 메뉴는 짜장면, 짬뽕, 우동뿐이다. 가스 불 대신 화력 좋은 연탄불을 계속 사용 중이며 불 꺼지면 영업을 못 해 새벽 4시경 남 사장님이 연탄불 갈아 주는 일을 한다.


결제는 현금만 가능했다.(현재는 계좌이체도 가능하다.) 독특하게 짜장면, 짬뽕을 시켜 큰 밥그릇에 담은 막걸리와 함께 먹는 손님들이 많았다. 현재는 잔술 대신 막걸릿병으로만 팔지만 잔은 예전처럼 밥 그릇을 내준다.


첫날 짬뽕을 먹고 현금이 없어 계좌 이체해 드리려 하는데 남 사장님이 괜찮다며 나중에 또 오라고 하셨다. 고마움을 간직했다. 다음날 미리 현금을 찾아 다시 들렸다. 짜장면과 막걸리 잔술을 마시고 전날 먹은 짬뽕값과 함께 계산했다. 그날 먹은 짜장면과 막걸리가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2024 9 추억  짜장면과 막걸리를 떠올리며 다시 찾는다.

2019년 전경(사진 좌측)/2024년 9월 전경(사진 중앙)/2024년 9월 타고 남은 연탄재(사진 우측)

이유 있는 꿀조합

2019년 광명식당 짜장면을 처음 맛봤다. 주문 후 뽑은 첨가제 사용 적어 보이는 뽀얗고 넓적한 부드러운 생면을 삶아 그릇에 담고 돼지고기와 파, 양파, 당근 등 신선한 채소, 춘장 등을 섞어 화력 좋은 연탄불에 기름 적게 사용하여 볶은 삼삼한 짜장 양념을 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즉석에서 조리한 증거다.


짜장면 한 젓가락 후루룩 먹고 넓고 깊은 밥 그릇 속에 담긴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켠다.


검은 짜장면과 하얀 막걸리의 색감은 대조적이지만 맛은 묘하게  어우러진다. 짜장면과 술이 된 고봉밥을 먹은 느낌이다. 먹다 보면 약간 텁텁하고 느끼해질 수 있는 짜장면의 기름진 맛을 새곰한 막걸리가 시원하게 달래준다. 꿀조합이다.


단골분들이 함께 먹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2019년 광명식당 짬뽕(사진 좌측)/2019년 광명식당 짜장면과 막걸리(사진 우측)

2024년 9월 10시 50분쯤 광명식당 문 앞에 선다. 5년 만이다. 식당 좌측 구석에 타고 남은 연탄재가 보인다. 여전히 연탄불로 음식을 만든다는 물증이다.


11시 문 여는 시간이라 식당 앞을 서성인다. 남 사장님이 출입문을 열고 나와 더운데 안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첫 손님이다. 자리에 앉아 식당 내부를 살펴본다. 5년 전과 변한게 없어 보인다. 짜장면과 잔술을 주문한다.


남 사장님이 잔술은 팔지 않고 막걸릿병으로만 판다며 속사정이 있음을 말씀해 주신다. 예전에는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와 잔술을 파셨다고 한다.


5년 전 두 번 찾아 첫 날 짬뽕값을 받지 않은 남 사장님, 잔술로 먹은 짜장면과 막걸리, 주방을 지키던 주인 할아버지, 연탄 사용 등을 이야기 드렸다.


주인 할아버지는 코로나19 이후로 자연스럽게 은퇴하셨고, 연탄불은 지금도 사용하며, 자신도 좀 있으면 환갑이라며 아내와 함께 대를 잇는다고 한다.


주방으로 돌아간  사장님은 숙성해둔 반죽을 기계로 뽑아내 뜨거운 물에 삶아 하얀 그릇에 담는다. 연탄불 화구 위에 웍을 올리고 채소와 짜장을 볶는다. 듣기 좋은 소리다. 볶은 짜장 양념을  위에 붓는다. 메뉴에는 짜장면이라 썼지만, 간짜장과 다름없다.


남 사장님이 막걸리  , 커다란 그릇, 짜장면을 식탁에 놓는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넓고 깊은 밥그릇에 막걸리를 따른다. 하얀  대신 쌀뜨물 같은 뽀얀 막걸리가 담긴다.


막걸릿잔 옆으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갓 만든 음식의 따뜻함은 코로 향을 전한다. 향은 뇌로 전해지고 뇌는 침샘을 자극한다. 손은 뇌의 명령을 재빨리 눈치채고 짜장면을 골고루 비빈다. 숨을 한 번 쉬고 한 젓가락 크게 떠먹는다.


볶은 춘장의 고소함이 코와 입술, 혀를 자극하고 따뜻한 면은 어금니에 맞서지 않고 쩍쩍 붙는다. 알맞게 기름을 머금은 갓 볶은 채소와 돼지고기도 싱싱함을 '아삭아삭' '쫀득쫀득'이란 어찌씨(부사)를 귀와 어금니에 선물한다. 따뜻한 여운을 기억하며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켠다.


색감은 대조적이지만 맛은 히한타! (이 말은 희한하다 즉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아서 절묘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경상도 지방의 말이다.)


짜장면과 술이 된 고봉밥을 몇 번 더 반복해 먹는다. 짜장면의 기름진 맛을 새곰달곰한 막걸리가 말끔하게 달래준다. 꿀조합이다. 내 뒤로 혼자 온 지역 분과 타지서 온 두 명의 손님도 짜장면과 짬뽕에 막걸리를 주문한다.


짜장면과 막걸리. 면과 . 둘은 어우러져 3 풍미를 만든다. 시나브로 하얀 접시 바닥엔 검은 흔적, 밥그릇엔 하얀 흔적만이 남는다. 순수와 혼탁은 사라졌지만 또렷하게 먹는  가슴에 스며든다. 5  먹은 추억의 맛을 들춰내고 꾸밈없는 맛을 추억으로 겹쌓는다.


짜장면에 막걸리를 마신다. 많은 분이 함께 먹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2024년 9월 광명식당 짜장면과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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