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오송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 '木瓜공원'안에는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모과나무 한그루가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천연기념물인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다. 높이 12m, 가슴둘레 3m를 넘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 모과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노거수다.
조선 세조 초 모과울에 은거하던 류윤이 세조의 부름을 받았을 때 이 모과나무를 가리키며 쓸모없는 사람이라며 거절하자 세조가 친히 ‘무동처사’라는 어서를 하사한 유서 깊은 나무다.
모과나무는 탐스럽게 익은 열매가 보기도 좋고 향도 좋지만, 딱딱하고 신맛이 강해 먹을 수는 없다. 먹거리를 확보하는 일이 생명과 연계되었던 옛사람들에겐 먹을 수 없는 열매를 맺는 모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였다. 더하여 너무 단단해 목재로서의 기능도 거의 없었다.
11월 14일 모과나무를 찾았다. 봄철 담홍색 예쁜 꽃을 수줍게 피우던 500살 노거수는 갈색 잎은 떨구고 노란 열매를 여린 가지 끝에 풍성하게 매달고 있었다.
나무를 둘러봤다. 오랜 세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 흔적인 울퉁불퉁한 옹이가 승천하는 용을 닮았고, 매끈한 줄기 표면에는 특유의 점박이 무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무의 연륜이 고스란히 눈에 보였다.
여러 방향에서 모과나무를 둘러봤다. 공원 앞 도로로 가끔씩 자가용만 지나갈 뿐 모과나무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연기념물 나무 열매는 함부로 따면 안 된다. 주위를 돌다 보니 달걀만 한 모과가 떨어져 있다. 감사하며 주었다.
30여 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 가려는데 투두둑 큰 소리가 들렸다. 답사객의 눈은 소리의 위치를 날래게 확인하고 걸음을 옮기게 했다. 참외만 한 모과 두 개가 떨어져 있었다. 그중 옅은 푸름을 간직한 모과 하나를 주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 쓸쓸했던 어르신이 자신을 찾아줘 기특해서 주신 500년 세월을 품은 선물이었다.
울산 여행 때 이기철 시인님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 첫 장도 넘기지 못했다. 주운 모과나무 두 개를 책 앞에 두었다. 시인님이 청주에 오시면 모과나무를 드리고 향이 밴 책의 첫 장을 넘겨보려 한다.
못 생겨서, 쓸모없어서 살아남은 500살 모과나무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연의 순리대로 싹 틔우고, 꽃 피우고, 잎을 떨구고, 열매를 맺고 있다.
500살 어르신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