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Dogville)

용서라는 오만함

by 코울필드


만약 당신에게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도덕성의 이상에 취해서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여자가 있습니다.


과연 이 여자는 마을의 실체를 알고 나서도 똑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영화는 '도그빌'이라는 평온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마을에는 사소한 비밀까지도 지켜줄 것 같은 선량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그빌에는 도덕적 우월감에 심취해 동네 주민들에게 도덕 강의를 하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이자 소설가, '톰'이란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매주 동네주민들을 모아놓고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강조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룬 것 하나 없이 고작 장기 내기에서의 승리에 도취하는, 위선적이고 추한 인간이죠.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한적함이 흘러가던 날 오후, 도그빌에 한 여성이 찾아오게 됩니다. 여성의 이름은 ‘그레이스(Grace)‘로, 마피아 갱단들에게 쫓기는 중이었습니다. 톰은 그런 그녀를 마피아들로부터 숨겨주고, 자신이 구원자가 된듯한 우월감에 빠집니다.


그녀는 도그빌 마을 입구에 있던 '모세'라는 개의 뼈를 훔친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이 마을을 다시 떠나려 하지만, 톰은 이곳 사람들의 선함을 강조하며 동네에서 머물 것을 권유합니다.


톰은 다시 마을주민들을 모아서 그들의 도덕성을 강요하며 그녀의 동네 입주를 설득하고, 그렇게 그녀에게는 2주 동안의 테스트 기간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레이스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모든 집을 찾아다니며 일거리를 내줄 것을 부탁합니다. 처음엔 모두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생산성의 가치를 알게 되자 그레이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편리함의 도구로써 그녀를 대하기 시작하죠. 마을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곧 노동의 갑을관계로 전락하게 되고, 그녀가 모든 것을 수용함으로써 주민들은 일종의 면죄부를 가지게 됩니다.


노동을 하면서 그레이스는 점점 마을 사람들에게 친밀감과 정을 느끼게 되고, 주민들의 선의를 우정이라고 여깁니다. 그녀는 척과 베라 (7명의 자녀를 둔 부모)의 아이들을 돌보고, 올리비아의 집에 가서 피아노를 쳐주고, 건강염려증이 심한 톰의 아버지와 장님 메케인의 말벗이 되어주며, 창녀촌에 다니는 의 고민까지 공감해 주는 등 허상뿐이었던 그들의 삶에 진실함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진저가게에서 주민들이 모두 흉측하다고 여기는 7개의 인형을 하나씩 사모으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이상을 인형에게 부여합니다. 7개의 인형을 모으는 일은 그레이스에게 있어 도그빌에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그녀는 만장일치로 도그빌의 주민으로서 인정받게 됩니다. 처음엔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가득했던 주민들도 이제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톰 또한 그녀를 구원해 줬다는 착각 속에서 애틋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인정욕구가 심한 톰은 좋아한다는 표현 조차 하지 못한 채 위선적인 포장지로 그녀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방식을 취해요. 자신을 초월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그의 허상, 껍데기뿐인 포장지에 그레이스는 현혹되고 맙니다.


행복한 나날도 잠시, 마을에 경찰들이 들이닥치게 되고, 그레이스는 은행강도범이라는 누명을 씌고 현상수배범이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범법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고 위험부담에 상응하는 보답을 그녀로부터 받으려 하죠. 톰은 그럴싸한 말로 그레이스를 설득시키려 하지만, 포장지 속에 있는 건 명분 있는 노동착취뿐이었습니다.


경찰들이 다녀간 뒤, 선량했던 도그빌의 주민들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장님 메케인은 자신이 장님이라는 것을 이용해 그레이스의 몸을 더듬고, 척의 아들 제이스 또한 그녀에게 애정을 가장한 가학적인 행위를 요구합니다. 척 또한 본인의 억압된 욕망을 참지 못하고 성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협박하죠. 결국 척은 그레이스를 겁탈하게 되고, 톰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분통해하며 그녀를 도그빌로부터 탈출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후 그레이스는 척의 아내 베라에게 바람을 피웠다는 누명을 쓰고, 장님 메케인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척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협박당합니다. 애정과 육욕을 혼동하는 척과의 논쟁을 포기하고 순응해 버린 것입니다. 이 와중에 톰은 거창한 탈출 계획을 세운답시고 모든 상황을 외면한 채 도망가버렸죠.


위선과 가식이 가득한 동네에서 그녀는 끝내 목숨과도 같은 7개의 인형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만, 척의 아내의 질투심으로 인해 모두 깨지고 맙니다. 그동안 지키고자 했던 신념과 순수함의 가치들이 모두 깨지는 순간, 그녀는 평정심을 잃고 좌절하게 되죠. 순수함은 투명하지만 그만큼 쉽게 깨진다는 걸, 이때까지 그레이스는 알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마을에 남아있을 수 없는 그레이스는 톰과 함께 탈출 계획을 마무리하고, 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사과박스가 담긴 트럭에 올라탑니다. 그러나 순조로울 것 같았던 그녀의 탈출 계획에는 역시 도그빌의 추악한 송곳니가 숨겨져 있었고, 트럭을 운전한 벤 또한 협박을 통해 그녀를 겁탈하게 됩니다. 그의 문란한 생활까지도 이해하고 공감해주려 했던 그레이스의 순수한 선의가 벤의 악의로 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죠.


결국 그녀는 마을로 다시 끌려오게 되고, 종과 타이어가 달린 쇠목줄을 찬 채 마을 주민들에게 감시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레이스는 전보다도 훨씬 심한 착취를 당하며 자아를 잃어가고, 사람이 아닌 기계로써의 삶을 살아갑니다.


톰은 그레이스의 탈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의 돈을 훔쳤지만, 자신이 그 죄로 인해 불리한 상황에 몰리게 되자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쓰는 비겁한 행동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톰을 믿습니다. 톰은 지금껏 그림자 속에 감춰진, 그레이스에게 행해졌던 악랄한 행위들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잘못된 과오들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솔직함은 인정받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갑니다. 게다가 주민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자 그레이스를 악인으로 낙인 시키고, 내쫓으려 하죠.


톰또한 자신의 우월함이 부정당하려 하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레이스에게 성적 관계를 통한 사랑의 증명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톰과의 사랑만큼은 주체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불신과 위선이 가득한 도그빌에서 유일하게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톰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톰은 "너도 그들과 똑같다면 협박해서라도 나를 가져."라는 그레이스의 말에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듯 큰 충격에 빠지고 맙니다. 본인의 위선에 스스로 잡아먹혀버린 톰은 몰래 숨겨놓았던 마피아의 명함에 전화를 걸고, 그녀를 감옥에 가둡니다.


이내 마피아들이 마을에 찾아오고, 톰은 기다려다는 듯이 마피아의 보스에게 그녀를 넘겨줍니다. 알고 보니 마피아 보스는 그녀의 아버지였고, 그레이스는 마피아라는 폭력적인 집단의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나온 거였죠.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했었고, 결핍된 감정들을 타인에게서 채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만'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다르게 자신이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자신이 꿈꾸는 도덕적 이상에 심취했을 뿐이었죠. 그레이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을 함부로 심판한다는 점에서 오만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히려 그녀가 타인을 동정했기 때문에 오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레이스는 처음부터 사람들을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톰과 같이 우위와 우월의식에 심취한 채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 이상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도그빌의 사람들을 '개'와 동일시하며 개는 본능을 따를 뿐 용서해야 된다는 아주 경솔하고도 오만한 발언을 하고 맙니다. 이후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녀의 대화는 인간의 오만함과 도덕성, 도덕적 잣대와 가치, 윤리적 딜레마와 같은 인간의 본성을 관통하고 탐구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집니다.


제가 오만한 건 남을 용서하기 때문인가요?
저들은 나처럼 고귀한 성품을 가질 수 없으니 면죄해 주자. 이보다 더 오만한 게 어디 있니?

그레이스는 도그빌에서 지내는 동안 줄곧 자신의 높은 도덕적 이상에 도취하여 남을 함부로 동정하고 용서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마피아라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과 본인의 결핍을 타인으로부터 취하려 한 거죠. 그렇다고 그레이스의 행동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적당한 선, 바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선의를 갖고 인정을 베풀고 타인을 용서하는 마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동기와 결과에 대한 본인만의 확실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레이스는 사람들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레이스에게 본인의 권력을 부여하려고 하자, 그녀가 말합니다.

"도그빌 사람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어"

여기에 대한 아버지의 답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죠.

"그들의 최선이 과연 훌륭한 것일까?"

"그들은 진정으로 널 사랑하니?"


이 말을 들은 그레이스는 본인이 착각 속에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도그빌 주민들 또한 힘을 갖지 못했을 뿐, 마피아 조직과는 다를 게 없는 인간들이었던 거죠. 인간의 충동적이고 나약한 본성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적어도 그녀의 아버지는 도그빌 사람들보다 그녀를 훨씬 많이 사랑했을 것입니다.


이제 도그빌의 운명은 그녀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구름이 흩어지고 달빛이 비치자 그레이스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도그빌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낡고 흉측한 몰골의 건물들, 덤불의 메마른 가시, 사람들의 가식적이고 추한 모습들까지. 그레이스는 세상을 위해 이런 곳은 없어 저야 마땅하다고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러고선 직접 본인의 손으로 톰을 죽이고,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던 베라에게 더 끔찍한 방식으로 복수를 해줍니다. 결국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했던 도그빌은 총소리와 불길로 채워지고, 개 ‘모세'만 남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됩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그레이스의 복수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그녀가 실천하고자 했던 도덕적 가치의 결과는 결국 복수뿐이었던 것인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구원자'라고 여기며 그들에게 벌을 내렸죠. 그녀의 결단에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거부하고 위선과 가식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맞는 최후의 결말이란 '본능'이란 뼈다귀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지, 아니면 또 다른 파멸을 암시하는 것일지는 열린 결말로써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도그빌은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삶만이 존재한, 위선과 가식이라는 가면으로 그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인간들의 어두운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욕망과 생존본능 앞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이중성을 띄고 있는지 말이죠.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도 도그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SNS에는 톰과 같이 허상뿐인 삶이 가득하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비교하며 불행해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톰은 현실을 살고 있지 않았어요. 그저 자신이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겁 많은 이상주의자 일 뿐, 사랑하는 여자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지도, 지켜주지도 못한 남자였습니다.


그레이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결핍을 타인에게 의존함으로써 주종관계가 형성되고 악순환의 반복일 뿐, 그녀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이나 순수함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버지를 이해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오만함을 드러냈죠. 그레이스를 보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 겸손'이란 것도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남을 함부로 평가할 수도 없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 또한 함부로 해서 안됩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것과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이상일뿐, 현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도덕적 규범과 윤리적인 행동은 본인의 양심과 공동체 의식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거부하고 억압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았다는 것만큼 오만한 사고가 있을까요? 우리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오만함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다정함을 갖추고 아픔을 이해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요일 연재
이전 07화베일리와 버드